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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리 May 27. 2018

소란스러운 밤

마음에 외로움이 내릴 때


마음이 추운 어느 날

내려야 하는 역을 지나쳐 나는 불현듯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떠나고 싶은 생각이 있어 터미널로 가려던 것은 아니다. 다만 당장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헤집고 터미널 옆 백화점 푸드코트에 들어섰다. 나는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화려하게 진열된 음식을 보거나, 아무 표정 없는 사람들을 보았다. 가끔씩 아이 몇 명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 음색냄새 가득한 푸드코트 주위를 맴돌다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자, 

가장 먼저 관 불이 켜졌고 이내 어두워졌다.

거실 불을 켜고,

부엌 불을켜고,

내방 불을 켜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TV를 켰다.

집은 금새 밝아지고 시끄러워졌지만 쓸쓸한 공기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 입기위해 입었던 옷을 책상 의자에 걸쳐 두었다.

음식 냄새를 잔뜩 머금은  늘어져 있는 나의 옷. 나의 하루. 나는 그것들을 의자에 걸쳐 둔 채 한동안 두었다.



TV를 꺼야 하는데


"두산 베어스 김재호 선수가 짜릿한 역전 쓰리런 홈런을 날렸습니다." 거실에서 스포츠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소리가 들린다.

잠을 청하기 위해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니, 눈꺼 아래로 시린 물기가 내려 앉는다.


마음에 외로움이 내려앉던 날

나는 그렇게 소란스러움을 안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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