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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벽 Jun 17. 2019

로스쿨일기: 불안은 나의 친구

불안을 통하여, 불안과 함께, 불안의 안에서 

사실 로스쿨 3학년의 학습 강도가 1, 2학년 때 보다 더 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것들의 양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지만, 다들 공부에 요령이 생기기도 하거니와 세세히 들여다보아야 하는 정도는 어쩌면 오히려 경감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1학년 계약법 공부시에는 민법 교과서의 세부적인 내용도 다 들여다보지만, 지금은 오히려 큰 줄기 위주로, 일부 가지 부분을 조금 보는 형태의 학습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전에는 큰 줄기를 볼 능력이 없어서 세세한 이파리를 들여다보고 있던 것도 있겠지만, 초반의 학습에서 있어서 그러한 흐름을 잡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학부에서 법학 전공한 것은 일단 논외로 하자. 왜냐면 나에겐 큰 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3학년은 물론 여전히 감당하기 어려운 학습량에 허덕이지만 사실 제일 크게 괴롭히는 것은 역시 불안감이다.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6월 모의고사 부터 시작해서, 적어도 11월 말 정도까지는 모든 과목이 시험에 대비가 될 정도로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본다면 한 과목당 주어진 시간이 결코 넉넉치 않다. 제한된 시간 내에 합격 가능한 수준으로 내가 각 과목들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불안이 모두를 짓누른다. 


1, 2학년 때는 다소 모르겠는 부분이 있어도, 이러한 부분은 나중에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만 3학년은 더 이상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없다. 지금 내가 해결하거나 정리하지 못한 부분은 고스란히 내 약점으로 남게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구멍이 뚫렸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발견되거나, 처음으로 이를 인지할 때마다 그 불안감은 엄청나게 가중된다. 이 불안감과의 싸움이 3학년의 가장 힘든 점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과연 이 학교의 가장 우선적인 입학목표인 변호사되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의 여부 말이다.  그리고 당장 그 지표가 될 6월 모의고사 성적은 과연 어떠할 것인가에 대한 추가적인 불안이 있다. 


사실 복학 전에 이렇게 되리라 생각했다. 

학년이 진행될 수록 점점 더 힘들고 고립감이 느껴질 것이라고. 수험생활은 아무래도 내가 가지고 있던 정서적 안정감을 서서히 갈아먹는 일이기 때문에 그 저장량이 뒤로 갈 수록 바닥에 가까워질 것이고, 가까워질 수록 불안감에 시달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측가능하다고 해서, 그것을 대면했을 때 고통이 경감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쌍했기 때문에 당혹스럽지 않을 뿐이지. 수험생은 무기력하다. 그는 생산하지 않고 오직 지식을 피동적으로 습득하는 존재다. 지식에 대한 숙달도의 평가는 그 어떤 경우에 있어서 보다 엄격하다. 또한 전과목에 대한 숙달도를 아주 세세한 객관적 기준에 의하여 외부에 입증해야 한다. 자격 평가는 어쨌든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이 불안감은 오직 하나의 결과의 달성 여부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과 관련되지 않은 활동으로는 이 불안감이 달래질 수 없다. 가령 정서적 안정을 위하여 학업 외적 활동을 한다던가 하는 것은 불안감 해소의 근본 요소라 할 수 있는 변호사 시험 합격을 위한 공부와 괴리된 것으로서 일시적인 도피를 제공할 수는 있으나,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오히려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뿐인 것이다. 


결국 이 불안감은 극복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익숙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곁에 두고 의식하지 않으려 할 뿐, 이것은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 검은 무언가의 속에서 이 역시 일시적인 것임을 되뇌이면서, 오늘을 버티고 그렇게 내년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없다. 당분간 불안은 나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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