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iscellaneou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새벽 Mar 02. 2020

유사하나 다른 것

사이비에 대하여 

요새 한창 사이비한 단체로 인하여 시끌벅적해서 생각나는 사이비 이야기. 


나는 카톨릭이 모태 신앙이긴 한데, 이제는 신자라고 할 수는 없는 그런 상태에 있어 그다지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카톨릭의 그 '보편교회'스러움이나, 격식을 갖춘 예식 같은 것은 좋아하는 편이고 성가 부르는 것도 좋아해서 미사는 가지는 않지만 가야 한다면 싫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신앙심이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런 모호한 상태에 있다. 


암튼 그것과는 전혀 별개로 학부 때는 순진해 보였는지 학교에 출몰하는 온갖 포교활동 하시는 분들이 꼬이곤 했는데, 그 중에 재밌는 일화들이 종종 있었다.


1. 술 드셨어요?

이건 조금 황당하면서 기분이 좋진 않았던 것인데, 한 번은 학교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앞에서 마주오는 커플이 있었다. 그런데 옆으로 막 지나쳐가려는 찰나에 갑자기 내 팔을 잡더니 뭔가 포교스러운 말을 할 것 같은 느낌을 풍기더니 갑자기 잠깐 머뭇거리더니 '그런데 술 드셨어요?' 이러는 것이다. 아니 난 정말 그저 평온히 교내 산책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대체 왜? 내가 얼굴이 조금 붉은 편이긴 한데 그 때는 저녁 시간 때였고, 그런게 도드라져 보일 상황도 아니었는데 뭐였을까? 지금도 미스터리다. 그러고는 아니라고 하자 그냥 그대로 지나쳐 갔다. 포교 대상으로 부적절하다고 보았던 것일까? 그렇게 나의 산책은 마음의 평화를 주기보다는 불쾌함을 남겼다. 


2. 달리기 하는 아저씨 

이 이야기는 비교적 훈훈한 편인데, 교회 포교 하는 아저씨였다. 그 때는 내가 캠퍼스에서 달리기를 많이 할 때였는데, 한여름이었다. 한참 뛰고 있는데 옆에 반팔 와이셔츠에 양복바지 구두 차림의 아저씨가 붙어서 같이 달린다. 이게 뭐지 싶었는데, 교회 포교 하는 아저씨였다. 이 아저씨는 불쑥 말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쾌한 느낌이 없었는데, 정말로 좋은 사람이었지 싶다. 그 때 나는 중거리 달리기에 꽤 자신감이 있었는데 아저씨는 불편한 복장에 구두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치는 기색없이 잘 달렸다. 나는 일부러 떼어놓을려고 페이스를 조금 올렸는데 정말 잘 따라왔다. 심지어 학교 경영관 가는 길하고 기숙가 가는 길 언덕까지. 대단한 열정이라고 밖에. 자기들 주말에 축구하는데 학교 운동장 빌려서, 그 때 나오라고 했다. 갈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포교하려는 것에 불쾌감이 없었던 유일한 경우랄까? 그 때 이 아저씨가 했던 말 중 기억에 조금 남는 것이, 나한테 왜 자기 말이 와닿지 않는지 아냐고 그러더니 서로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그래서 신앙도 믿음이 가장 먼저라고 (그런데 믿음, 소망, 사랑 중 사랑이 으뜸아닌가?) 일단 믿음이 있어야 그 다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는데, 종교적 신념의 구조를 잘 나타내주면서도 내가 신앙인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준 것 같아서 인상 깊었다. 지금도 미스테리다. 거의 땀도 별로 안 흘린 것 같은데 그렇게 잘 달리다니. 암튼 그것 하나만으로도 신실함을 인정해드리겠다. 하지만 저는 교회는 못갑니다. 


3. 그 쪽분 친구 없으시죠?

신촌 아트레온에서 심야 영화를 혼자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물론 낮이라고 해서 영화 볼 친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거의 한시가 다 된 시간으로 기억하는데, 길 건너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횡단보도 앞에서 누가 잡는다. 아뿔싸, 이 사람 역시 포교인이었다. 증산도나 대순진리회 계열로 추정한다. 한참 이야기하는데 납득 안 가는 논리 전개를 해서 그런 부분마다 반박을 했더니 거의 이십분 넘게 이야기 들어줬는데 갑자기 펙 하고 토라지면서 나한테 화를 내더니, "그런데 그쪽분 친구 없으시죠!" 이러더니 확 돌아서 가버린다. 어안이 벙벙해졌는데, 내가 굳이 친구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닌데! 친구가 없다니! 꼭 그래서 혼자 심야영화 본 것도 아닌데!!!! 억울했지만 나에게 반박의 기회를 주지 않고 그 사람은 그렇게 씩씩 불면서 떠나갔다. 이봐요, 나도 친구가 있다구요. 



4. 고등학교 친구한테 당하다. 

대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캠퍼스에서 우연히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이 친구는 고딩때는 거의 한마디도 안해본 친구였는데, 그래도 졸업하고 학교에서 보니 반가웠다. 알고보니 우리 학교 말고 안암에 있는 학교를 다닌다고 했는데, 그 때가 중간고사 직전이라 그냥 인사하고 전화번호 교환하고 다음에 보자하고 헤어졌다. 보통은 그러고 나서 연락을 서로 안하는데, 중간 끝나고 정말로 연락이 왔다. 고등학교 친구니 안 볼 이유도 없고, 만나게 되었는데, 오후에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그런데 만나기로 한 당일에 한참 잘 만나고 있는데, 혹시 있다가 자기가 친한 언니랑 저녁 약속을 했는데 언니가 조금 일찍 도착했다고 같이 봐도 되냐고 한다. 당연히 그러라고 했는데, 이게 고전적인 포교 수법임은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 언니라는 분은 와서 처음엔 일상대화를 하다가 점점 동양철학스러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나는 그런 부분에 흥미가 있던 터라 처음엔 들어주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점점 산천포로 빠지는 것 같아서 중간중간 내가 반박했는데, 대화가 전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친구가 부른 언니라 참고 듣고 있었는데, 나는 친구가 말려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중간에 내가 멈추게 해달라고 쳐다보니까 "그런데 새벽아 나는 언니 말이 맞는 거 같아" 이러는 것 아닌가. 두둥. 그제서야 나는 둘이 한통속인 것을 알았고, 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나왔다. 사라진 내 주말 오후 두시간은 어쩔 것인가? 화도 났지만 어쩔 수 있나... 암튼 언제든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고 나왔다. 알고보니 그 친구는 그 학교 대순진리횐지 증산도인지 암튼 그 계통 동아리에서 제법 높은 지위에 있어서 나 뿐 아니라 다른 고등학교 친구들한테도 열심히 포교하는 친구라고 했다. 처음엔 나한테 자기도 성당다닌다고 해서 그런줄말 알았고, 별다른 의심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뭐 그냥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할 수 밖에 없었다. 



5. 아니오, 다른데요?    

이건 비교적 별일 아닌 것이었는데, 이번에도 증산도인지 대순진리회인지 어디에 걸려서 이야기 좀 들어주다 본색이 나오길래 아 저 증산도(혹은 대순진리회)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이러고 갈라는데, 나보고 저는 증산도(혹은 대순진리회) 아닌데요, 대순진리회(혹은 증산도)인데요, 래서 그게 그거 아닌가요 했더니, 갑자기 화를 내면서 아닌데요 전혀 다른데요. 이래서 무서워서 도망친 적이 있다. 



6. 오늘의 교훈

위 이야기들은 주로 학부 저학년 때 아직 내게 상냥함과 친절함이 남아 있을 때의 이야기들은데, 지금은 그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지 않기도 하거니와 나도 들어줄 여유도 없고. 암튼, 마음이 유약해져있을 때 손길을 뻗치면 저항하기 힘들 수 있겠다는게 이해가 되면서도, 너무 허황되게 이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겠다는 말들에 왜들 넘어나가 싶기도 하고, 사실 종교의 본질은 추상과 신비주의에 기댈 수 밖에 없으니 믿는 마음을 가지는 구조는 사이비던 아니던 다 같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나는 세속에서만 살 수 밖에 없음을 오늘도 되새기는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