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한 대학생활-1

보통사람의 진로 찾기-2

by 비기너
대학이 날 어떻게든 도와주겠지?

아직도 대학 합격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엄청난 오르막길 위에서 살았는데 오르막길 아래 카페에 있는 언니에게 합격소식을 알려주기 위해서 정말 미친 사람처럼 폴짝폴짝 뛰며 내려갔었다. 그때까지도 건축의 ㄱ도 몰랐지만 그냥 마냥 잘 맞을 것 같고 재밌을 것 같고 앞으로 어떻게든 핑크빛 미래가 펼쳐질 것 같았다. 건축을 처음 선택할 땐 모르니까 끝이 어떻든 한 번 다 경험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원하던 대학에 붙으니 정말 바보같지만 대학이 날 도와줄 거란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이 생각은 내 성장에 발목만 잡는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건축뽕에 취한 1학년

신입생때부터 건축뽕에 취해서 설계수업에만 집중했고, 뭔진 잘 모르겠어도 열심히는 했었다. 근데 문제는 다른 학부생들보다 덜 놀고 하루종일 설계실에만 있는 것 같은데 시간 대비 실력이 쌓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나마 작도하는 수업은 노력대비 결과가 보였지만, 본격적으로 설계를 시작할 땐 대체 건축적으로 어떻게 풀지?? 가 하루종일의 고민이었다. 멋있는 건물을 보고 분석하는 건 그나마 할 줄 아는데, 내 설계는 어떻게 풀어야할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었다. 그럼에도 그 땐 건축이 전부라서 언젠간 알게 되겠지 하면서 계속 했었고, 건축에 도움될 만한 학과 내 동아리들(영화, 사진 등)도 참여했었다.(다시 돌아가면 내향형인 성격을 이겨내고 중앙동아리 하나라도 해볼걸 싶다.) 내 가능성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일단 다 접해보자 했던 시기였다.


설계 트라우마

2학년 1학기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캐드와 스케치업을 배우고, 설계를 하기 시작했다. 설계는 처음부터 내가 컨셉을 잡고 스터디하고 디벨롭을 해야 해서 스스로 찾아야 할 게 많은데, 문제는 남이 떠먹여주는 학원공부에만 익숙해서 '뭘 찾아야 하는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어떻게 적용할지' 등등이 너무 막막했다. 처음해보니 당연히 뭐가 좋은 설계인지 모르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는데, 여기에 더 큰 문제는 호랭이 교수님을 만났다는 거다... 귀엽게 표현해서 호랭이지, 사실은 막말하는 교수님ㅎ 막말하는 레벨이 만렙이셨다ㅎ 크리틱 도중에 우는 학생은 너무 많고 심지어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쓰러진 선배도 있다고 했다. 건축하지마라, 인생 제대로 살아라 등 인생 훈계까지ㅎ 이게 건축사무소 일상이라면 건축은 절대 하고싶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스트레스만 엄청!!! 받고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대 편입 찍먹

인생 최고 스트레스였던 1학기가 지나가고 원래 가고 싶었던 미대 편입을 알아봤다. 유명한 편입학원에 등록해 OT까지 들었는데 문득 이 바늘구멍 같은 편입을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가능성이 너무 낮고, 미대편입에 성공한다고 해도 지금 대학보다 낮은 순위의 대학을 가야하고(이 때의 나에게 대학 네임밸류도 중요했다) 미대 졸업 후의 미래를 생각하니 더 아득했다. 그래서 차라리 지금 대학의 성적을 높여서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하는 방향으로 틀게 되었다. 2학기는 교양수업으로만 채워서 알바도 했는데, 생각보다 성적이 좋게 나오진 않았다.(독어, 철학 같이 어려운 수업을 넣었어서 그런 것 같다.)


알바알토라는 불씨

2학기를 교양만 들었으니, 1학기가 붕 떴다. 그런데 엄마가 여행비를 지원해주겠다고 해서 갑자기 장기여행을 가게 되었다. 집이 넉넉한 편은 아닌데, 엄마가 유럽여행 갔을 때 너무 좋았어서 꼭 딸래미도 보내줘야겠다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엄마랑 사이가 엄청 좋은 편은 아니지만(tmi) 여행은 정말 두고두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무튼 나는 영어를 쥐뿔 못했지만 여행은 너무 설렜다. 1학년 때 알게 된 알바알토의 건축물부터 보고 싶어서 무작정 핀란드로 떠났다. 알바알토 위주의 여행코스이긴 했지만 도시 곳곳에 알토의 조명, 가구, 건축물이 있어서 신기했었다. 핀란드에서 유명한 건축가임은 알고 있었지만 진짜 이렇게 건축가 한 명이 도시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게 확 와닿는 경험이었다. 좋은 건축물에 들어가본 경험도 많이 없던 때라서 스튜디오에서 느꼈던 공간감도 정말 충격적이었다. 포근하고 멋있는 공간.. 그렇게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고 이런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학교에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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