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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애로운 사람이 되자.

by 심상

자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애란 ‘자녀’를 돌보듯 부하를 아끼고, ‘부모’를 모시듯 상사를 존중하며, ‘나’를 아끼듯 연인을 배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애는 어떤 고난이 닥쳐도 극복할 수 있게 하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된다. 나 자신을 돌보지 않거나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자녀를 아끼는 마음조차 없다면 그 누구의 마음도 얻기 어렵다. 관계의 기본은 자애에서 비롯된다.


자녀를 통해 우리는 ‘희생’을 배우고, 부모를 통해 ‘위대함’을, 그리고 아내를 통해 ‘고마움’이라는 단어를 배운다. 그러나 이처럼 희생과 위대함, 고마움이라는 개념을 많은 사람에게 적용할 수는 있어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그릇이 다르고, 관계마다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애는 보편적이지만, 무분별한 감정 소비는 또 다른 상처를 낳을 수 있다. 그러므로 자애도 지혜롭게 적용되어야 한다.


논어에는 “썩은 나무에는 무늬를 새길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는 견고한 담을 쌓을 수 없다”고 했다. 뿌리부터 썩은 사람이 있다. 있어서는 안 될 죄를 짓고 회개한다고 해도 그 한계는 명확하다. 썩은 뿌리에는 기대와 더불어 불신도 자란다. 겉으로는 잘 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언젠가는 그 뿌리를 뽑으려는 이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작은 죄를 범하더라도 큰 죄만은 절대 지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또한 썩은 사람은 배우려 하지 않으며, 타인을 믿지 않는다. 가르치기도 어렵고 배울 것도 없다. 이런 사람들과는 결코 견고한 신뢰를 쌓을 수 없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신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결국 신뢰란 상호적인 관계 안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 뿌리가 병든 관계는 겉으로 아무리 멀쩡해 보여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만다.


돈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 돈이 우선순위가 될 때마다 의지가 꺾이곤 했다. 내가 들인 시간, 비용, 감정에 비해 수익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꾸준히 하면 언젠가 보상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시기가 언제일지 모른다는 불확실함은 내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날카롭고 예민해지는 자신을 보며 초심을 잃은 듯한 허탈함을 느꼈다.


예전엔 단순히 글을 쓰는 것 자체로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목표가 돈으로 바뀌는 순간 효율을 따지게 되고, 생각은 점점 닫혀가며 결국 싫증만 남게 되었다. 생산성과 결과만 따지는 사고방식은 창의성과 열정을 갉아먹는다. 일의 의미는 사라지고, 나 자신도 소외되는 느낌이었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인간은 노동에서 소외될 때 존재의 이유를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돈을 원한다. 왜냐하면 베풀고 싶기 때문이다. 베품의 힘을 나는 알고 있다. 새해 인사, 생일 선물, 축의금, 조의금, 개업 선물, 돌잔치 등 인생에는 상대를 챙길 수 있는 기회가 끊임없이 있다. 누군가의 희노애락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 또한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과도 화해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어른이 되어 자존심이나 타이밍 때문에 사과하지 못했을 때, 경조사는 진심을 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하지만 반대로, 베풀고도 제대로 돌려받지 못했을 때 마음속에 서운함이 생긴다. 내가 한 것보다 적은 선물을 받거나,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번뇌가 일어난다. 그러나 이 번뇌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다. 감정을 추슬러 다시 평정심을 회복하고,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은혜를 모르는 사람, 무례한 사람, 나와의 관계를 소홀히 여기는 사람의 태도를 간파할 수 있다. 이런 경험은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결국 베품은 무조건 나에게 유익하다. 관계에서 치르지 못한 감정의 빚을 스스로 털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자유는 내가 먼저 베푸는 데서 온다.


또 중요한 순간, 나를 챙겨주지 않았던 사람에게 다시 중요한 행사가 생겼을 때 내가 먼저 베푼다면, 그 사람은 미안함을 느끼고 나는 떳떳해진다. 이것이야말로 베품의 진짜 힘이다. 그러나 더 인자한 사람은 자신이 받은 것을 기억하고 되갚는 사람이요, 또 자신이 베푼 것을 굳이 기억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한 인격이야말로 진정 자애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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