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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언이 거듭되면 자기 자신도 잃는다.

by 심상

우리는 흔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선언’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 “이 일을 반드시 해내겠다”는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다짐이자 타인과 맺는 일종의 ‘사회적 계약’이다. 선언을 하면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게 되고, 타인의 기대를 의식하면서 책임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공공 선언 효과라고 한다.


사람은 공공연히 밝힌 말일수록 스스로를 더 구속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말과 행동 사이에 일치성을 유지하려는 인지 부조화 이론에 따라, 말과 행동의 불일치에서 오는 심리적 불편함을 회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엔 전제가 있다. 그 말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목표를 선언하게 되면, 오히려 불안과 두려움을 자극하게 된다. 이때 마음속에는 ‘지키지 못하면 어쩌지?’, ‘실패하면 부끄럽지 않을까?’라는 자기 의심이 피어난다. 그 결과, 실천 이전에 자기 회의에 빠져버리고 만다. 선언은 동기부여의 수단이 아니라, 도망치고 싶은 압박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도 이를 설명할 수 있다. 너무 큰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즉시 실현하려 하면, 뇌는 이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한다. 이는 편도체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 편도체는 공포와 불안을 처리하는 뇌의 영역으로, 비현실적이거나 감당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과도하게 활성화된다. 이로 인해 행동은 마비되고, 회피가 발생하며, 자기 효능감은 점점 낮아진다. 자기 효능감이란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인데, 이 신념이 무너지면 사람은 점차 자신의 말과 행동을 믿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선언은 실천이 동반되지 않으면 결국 실언이 된다. 실언은 단순히 말의 실수가 아니다. 그 말이 지켜지지 않을 때, 그 사람의 말 전체가 의심받고, 나아가 신뢰를 잃게 만든다. 타인의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는다. 반복되는 실언, 반복되는 약속의 파기가 쌓이면 서서히 금이 가고, 결국엔 신뢰라는 유리그릇이 산산이 깨져버린다.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자신에 대한 신뢰 상실이다. 자신이 한 말을 스스로도 믿지 못하게 되고, 마음속에서는 ‘어차피 나는 안 될 사람’이라는 부정적 자기 인식이 강화된다. 이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충족적 예언의 악순환에 해당된다. 스스로에 대해 부정적으로 예측하고, 그 예측이 실제로 행동을 제약하여 결국 그 부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한 번, 두 번의 실언은 작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누적되면, 자신에 대한 믿음과 존재감마저 위태로워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때부터 자기 규정의 권한이 타인에게 넘어간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약해질수록, 사람은 외부의 시선과 평가에 더 휘둘리게 된다. 내가 나를 정의하지 못하면, 타인이 나를 정의하게 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타인의 부정적인 면을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심리학의 부정성 편향 때문이다. 사람의 뇌는 생존을 위해 긍정적인 정보보다는 부정적인 정보를 더 민감하게 처리한다. 그래서 한 번 신뢰를 잃으면, 그 사람의 좋은 면보다 부정적인 인상이 강하게 각인되고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특히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혹은 책임이 큰 사람일수록 말의 무게는 더욱 크다. 리더의 말은 단순한 개인 의견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방향을 정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침이 된다. 따라서 말에는 책임이 따르고, 책임에는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리더는 지도력을 잃고, 결국 아무도 그를 따르지 않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큰 목표나 사명을 가진 사람일수록 선언에 앞서 실천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입으로 먼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삶에 새겨야 한다. 말을 아끼는 것이 결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다. 때로는 침묵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의지의 표현일 수 있다.


말의 힘은 크다. 하지만 그 말은 실천을 동반할 때 진짜 힘이 된다. 말은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인 동시에, 자신을 규정짓는 틀이다. 실언이 거듭되면, 그 틀은 뒤틀리고 깨진다. 결국 자신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말하기 전에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나는 그 말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 앞에서 정직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말은 비로소 믿을 만한 것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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