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찔: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오늘은 지난번에 말씀하신 '효제', 중에서도 '효'에 관한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요순지도는 효제일 뿐이다'란 말씀의 충격이 워낙 컸었거든요. 효제 중에서도 효에 관한 말씀을 부탁드리는 건 두 덕목 중에서도 효가 우선이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 맹: 잘 지적하셨네요. 세상사에서 가장 큰 일은 부모를 섬기는 것이 가장 큰 일이고, 지켜야 될 일 중에서 가장 큰 일은 자신을 지키는 일입니다. 흔히 국가를 위한 희생을 세상에서 가장 큰 일이라 생각하고, 재산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지킴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죠. 국가를 위한 희생은 부모를 섬기는 데서 확장된 것이고, 재산을 지키는 것도 자신을 지키는 데서 확장된 것일 뿐입니다. 부모를 섬기는 것과 자신을 지키는 것 둘 중에서도 우선해야 할 것은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자신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부모를 잘 섬겼다는 말을 저는 들어본 바 없습니다. 자신을 제대로 지킬 때 부모도 잘 섬길 수 있지요.
■ 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자신을 지킨다는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요?
■ 맹: 이는 지난번에 말했던 수양과 관계된다고 하겠습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하여 타인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게 행동하는 것,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것이지요. 공자님께서 말씀하여 널리 알려진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몸과 피부와 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는 바로 자신을 지키는 행동을 언급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표면적으로는 몸을 잘 관리하는 것만 언급한 것 같지만, 몸을 잘 관리한다는 것은 마음의 관리와 긴밀한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몸의 관리만 언급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단견입니다.
■ 찔: 효의 반대는 불효이겠는데요, 불효 중에서 가장 큰 불효는 무엇인지요?
■ 맹: 후사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불효지요.
■ 찔: 흔히 효라고 하면 양지[부모의 뜻을 받듦]와 양능[부모의 건강을 살핌]을 말합니다. 후사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불효라는 말씀은 양능보다는 양지 측면을 언급하신 듯합니다. 그런데 확실하게 이해는 안 됩니다. 후사가 없는 것이 왜 불효 중에서 가장 큰 불효인지요?
■ 맹: 후사가 없는 것이 양지 측면에서의 불효라는 말을 맞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후사가 없는 것이 불효 중에서 가장 큰 불효냐, 하는 문제인데 그건 시[후대의 시경]의 내용을 참고하면 이해가 빠를 듯합니다. 시에 보면 상대를 축복하는 말 중에 "너의 자손이 메뚜기떼처럼 많아져라"라는 내용이 있어요. 이 말을 반대로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유의 대상은 생각나지 않지만, 무엇처럼 자손이 적거나 아예 없어져라, 라는 것이 되겠지요. 자손은 지속적인 생명의 흐름입니다. 자손이 없다는 것은 그 흐름이 끊긴다는 것이니 이는, 표현이 좀 과격합니다만,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자손을 두지 못한다는 것은 부모의 목숨을 끊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지요. 이보다 더한 불효가 어디 있겠습니까?
■ 찔: 부모와 자식 간에도 너는 너 나는 나 이런 의식이 팽배한 요즘에 귀담아들을 내용 같습니다.
■ 맹: 부모와 자식 간에 너는 너 나는 나라고요? 누가 그런….
■ 찔: 아, 아닙니다. (멋쩍은 표정) 선생님, 제가 알기로 선생님께서는 효를 언급할 때마다 항상 순(舜)을 언급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 맹: 그러지요. 앞서 불효 중에서 후손을 두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불효라고 했는데 순은 당시 아버지와 동생이 자신을 미워하고 협잡하여 죽이려고까지 했기 때문에 비밀 결혼을 했습니다. 그 대상은 요임금의 두 딸 아황과 여영이었지요. 요임금도 순의 아버지 고수에게 알리지 않고 자신의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냈습니다. 요임금 역시 고수에게 알리면 순이 결혼하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하여 알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후대의 군자들은 이 순과 요임금의 행동을 평가할 때 결코 잘못한 행동이라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부모에게 고한 것과 매한가지라 평가했습니다. 순의 행동은 부모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또 부모에게 자손을 잇지 못하는 불효도 하지 않은 두 가지를 충족시킨 것이었습니다.
■ 찔: 효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웃음)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문득 공자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떤 이가 우리 마을에서는 부모가 잘못을 하면 자식이 관가에 부모를 신고한다며 이 얼마나 정직하냐고 자랑하자, 공자님께서는 우리 마을에서 정직한 이는 이와 다르다며 부모가 관가에 끌려갈 정도의 잘못이 있으면 자식은 부모를 모시고 다른 곳으로 도망하는 이를 정직하다고 말한다고 하셨지요.
■ 맹: 그래요. 내게도 그와 유사한 내용을 물은 이가 있었지요. 만일 순이 옥좌[임금 자리]에 있고 기(夔)가 법을 담당하고 있는데 순의 아버지가 잘못을 저지르면 순은 이를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라고 질문하더군요.
■ 찔: 그것 참 난감한 질문이네요.
■ 맹: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했지요. "순은 기의 법 집행을 결코 막지 않았을 것이요. 법은 만인에게 공평한 것이니까. 그러나 순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옥좌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남몰래 아버지를 탈출시켜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살았을 것이요.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에 한 치의 아쉬움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요."
■ 찔: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던 것과 동일한 처사군요. 그런데 공자님께서 들었던 사례나 선생님께서 추측하여 말씀하셨던 경우나 모두 실제는 아닙니다. 그 점이 아쉽군요.
■ 맹: 제가 추측한 순의 처사는 순의 결혼 사실을 미루어 짐작한 것입니다. 견강부회한 것이라 보기 어렸습니다. 실제는 아니지만 실제와 다름없다고 보면 됩니다. 공자님이 말씀하신 경우도 아무런 근거 없이 말씀하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 찔: 선생님, 효는 법리[법의 이치. 객관적 시비 판단]보다 정리(정의 이치. 주관적 시비 판단]를 우선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 맹: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 단위가 가정이고 가정의 기본 관계는 부모와 자식 관계인데 부모와 자식 관계는 정리로 해결해야지 법리로 해결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 찔: 한 때는 효를 사회 발전의 저해 요인이라 하여 터부시 한 적도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종속되어 자율성을 상실하기에 사회 발전을 더디게 만든다는 것이었지요.
■ 맹: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말입니다. 사회 발전이란 궁극적으로 사람답게 사는 사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의 부모도 나의 부모처럼 여기고 남의 자식도 나의 자식처럼 여기는 사회인데, 효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사회 발전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효는 부모의 사랑에 대한 응분의 보답입니다. 그게 왜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됩니다. 또한 효는 자식을 부모의 종속물로 만드는 행위라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이 자신의 종속물로 남기를 바란단 말입니까. 부모는 자식이 자신보다 나은 것을 보람이요 기쁨으로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는, 즉 자식의 발전을 방해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 찔: 순의 아버지 고수 같은 경우가 그런 경우 아닐는지요?
■ 맹: 순의 효를 '대효[위대한 효]'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런 비정상적인 부모를 정상적인 부모로 돌려놓았기 때문에 일컬은 말입니다. 모든 이가 순처럼 효를 행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순의 효가 위대한 것이지요. 그러나 내가 얘기하는 효는 그런 위대한 효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의 자식 된 도리를 말하는 것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나의 생명이고 이 생명을 부여해준 것이 부모라면, 그 부모에 대해 응분의 보답을 해드리는 것은 이치상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 찔: 선생님의 말씀에 이의[다른 의견]는 없습니다. (웃음) 그런데 선생님 이치상 당연한 것임에도 왜 세상에는 효를 행하는 이가 많지 않을 걸까요?
■ 맹: 우리는 이치 속에 살아도 이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 속에 살아도 그것을 인식한 사람은 뉴우톤밖에 없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만유인력의 법칙을 아는 것은 뉴우톤이 발견한 것을 교육을 통해 전수받았기 때문입니다. 효도 마찬가지입니다. 효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한 사람은 순과 같은 성인입니다. 우리가 효의 가치와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순과 같은 성인이 언급하고 행동으로 보인 것을 교육을 통해 전수받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효를 행하는 이가 많지 않은 것은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라고, 저는 봅니다.
■ 찔: 효 역시 교육과 깊은 관련성이 있군요.
■ 맹: 그렇지요.
■ 찔: 선생님께서도 지극한 효자이셨다고 들었습니다만….
■ 맹: 어림도 없는 말입니다. 제가 부모님, 특히 어머님께 입은 사랑에 만 분의 일이라도 갚았다면 그 말을 들을 수 있겠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못됩니다. (눈시울을 붉힘)
■ 찔: 선생님, 끝으로 한 말씀만 더 여쭙고 오늘 대화를 마치고자 합니다. 효가 정치에도 의미가 있을까요?
■ 맹: 당연하죠. '효자 집안에 충신 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 말이 인터뷰하시는 분의 질문에 즉답이 될 것 같군요. 순을 대효라고 하는 것도 정치적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지도자가 효를 행하면 그 감화력이 백성에게 미치지 않겠습니까? 효와 정치는 밀접한 관련성이 있지요.
■ 찔: 그렇군요. 선생님과 말씀을 나누다 보니 문득 부모님 생전에 좀 더 잘해 드리지 못한 점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습니다.
■ 맹: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역으로 보면, 부모님 생전에 잘해 드리려 애썼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 찔: 그럴까요?
■ 맹: 그럼요. (웃음)
■ 찔: 그렇게 위로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선생님, 오늘은 이만 줄이고 내일 뵙으면 합니다.
■ 맹: 그러지요.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