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와의 대화

11화

by 찔레꽃

■ 찔: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수양과 관련하여 처세랄까 처신이랄까에 대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처세나 처신에는 대개 '술[재주, 방법]'이란 말이 붙어 부정적인 이미지를 풍깁니다만, 긍정적인 면으로 보면 세파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처세와 처신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자 합니다.


■ 맹: 처세나 처신에 '술'이란 말이 붙는 것은 대개 이익과 보신[몸을 보호함]만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는 것이 처세요 처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도[진리, 진실]의 실천을 위해서도 처세와 처신이 필요합니다. 이 경우에 '술'은 좀 적합하지 않은 용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 찔: 부정적인 의미이든 긍정적인 의미이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처하는 방식이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 맹: 그렇죠.


■ 찔: 제가 알기로 선생님은 특별한 처신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 맹: 하하하. 무슨 말을 들으셨기에 그런 말을….


■ 찔: 일례로 제선왕이 몸살을 이유로 선생님과의 회동 약속을 어겼을 때….


■ 맹: 아~ 그것 말입니까?


■ 찔: 좀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맹: 그러지요. 한 번은 제선왕과 회동 약속이 있었는데 왕께서 사자를 보내 몸살 때문에 조회를 볼 수 없어 회동 약속을 미뤘으면 좋겠다는 전갈을 보내왔어요. 사자는 왕께서 다음 날 조정에서 뵙기를 원한다고 하더군요. 나는 사자에게 나 역시 몸살 기운이 있어 내일 찾아뵙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지요.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동곽씨에게 문상 갈 준비를 했어요. 그때 제자인 공손추가 이렇게 묻더군요. "선생님, 어제 왕의 사자가 왔을 때 몸살 때문에 조회에 못 나갈 것 같다고 하셨는데, 갑자기 문상을 가신다고 하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 찔: 뭐라고 답하셨는지요?


■ 맹: 사실대로 말했지요. "몸살 기운이 나았는데, 문상을 못 갈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 찔: 몸살 기운이 나았으면 문상을 가실 것이 아니라 조회에 나가셨어야 할 것 같은데….


■ 맹: 왕께는 이미 못 간다고 했으니 굳이 갈 이유가 없지요.


■ 찔: 그런데, 제가 듣기론, 왕께서 선생님이 몸살 기운이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 약을 보내셨다고 하던데….


■ 맹: 그랬지요. 내가 문상을 가는 도중 제자인 맹중자가 사람을 보내 그 소식을 전하며 집으로 오지 말고 곧바로 조정으로 가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래, 내 할 수 없이 조정에 가기 위해 경추씨네 집에서 하룻밤을 유하게 됐지요. 문상하는 곳이 꽤 멀었거든요. 그런데 경추씨가 그날 밤 내게 이런 질문을 합디다. "인륜 중에서 가장 큰 인륜은 부모와 자식, 임금과 신하 간의 윤리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은 은혜를 주[핵심]로 하고, 임금과 신하 간은 공경을 주로 하지요. 저는 오늘 임금께서 선생을 공경하는 것은 보았으나, 선생께서 임금을 공경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 찔: 뭐라고 답하셨는지요?


■ 맹: 이렇게 말했지요. "임금을 공경하지 않는다고요? 그건 매우 섭섭한 말씀입니다. 제나라에서 과연 저만큼 임금을 공경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제나라 사람들이 임금께 인과 의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인과 의를 싫어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임금께서 인의를 실천할만한 인물이 못된다고 여겨서입니다. 이보다 더한 불공[공경하지 않음]이 있을까요? 저는 임금을 뵐 적마다 요순의 도를 실천하시라 권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한 공경이 또 있을까요?"


■ 찔: 경추씨의 질문 의도는 그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왕께서는 몸살로 회동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함을 표했고 선생님의 건강을 걱정하여 약까지 보냈는데, 선생님은 몸살을 핑계로 왕과의 회동을 거절하고 몸살이 나은 뒤에도 왕을 찾아뵙지 않은 점을 지적한 듯싶습니다.


■ 맹: 경추씨도 그런 말을 하더군요. 이렇게 말했지요. "제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선생의 왕에 대한 공경심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고, 군신 간의 예절에 있어 잘못된 행동을 한 것 아닌가 싶은 겁니다. 예[후대의 예기]에도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부모가 부르시거든 즉시 대답하고, 임금이 부르시거든 즉시 가라.' 애초 임금과 만나기로 했다가 못 뵙으면 다음 날에라도 바로 갔어야 하는데, 가지 않고 다른 집에 문상을 갔으니, 이는 예에 어긋난 행동이 아니오이까?"


■ 찔: 저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 맹: 음~ 예의 자잘한 조문에 의거하여 나의 행동을 비판한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신하 중에는 불소지신(함부로 대하지 못할 신하)도 있습니다. 일찍이 증자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진(晉)나라와 초나라의 부는 막대하다. 그렇다고 그 부에 꿀릴 것이 뭐 있겠는가. 내게는 인[어짊]이 있지 않은가! 저가 고관대작이라 한들 내가 그것에 꿀릴 것이 뭐 있겠는가. 내게는 의[옳음]가 있지 않은가!" 증자의 말씀은 바로 불소지신의 처신에 대한 말씀입니다. 천하가 공통으로 존중하는 세 덕목이 있으니, 높은 벼슬과 많은 나이 그리고 깊은 덕입니다. 조정에서는 벼슬이 으뜸이고, 마을에서는 나이가 으뜸이며, 세상의 교화에 있어서는 덕이 으뜸입니다. 임금은 이 셋 중에서 하나만 갖고 있을 뿐인데 어찌 그 둘을 가진 이를 함부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대하는 이가 신하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러기에 큰 뜻을 가진 임금에겐 반드시 함부로 대하지 못할 신하, 즉 불소지신이 있는 법입니다. 불소지신의 덕과 도를 존중하고 따를 때 임금의 큰 뜻은 성취될 수 있지요.


■ 찔: 그런 실례를 들어주실 수 있는지요?


■ 맹: 탕임금과 이윤, 제환공과 관중의 경우가 그렇지요. 탕임금은 이윤에게 가르침을 받은 뒤 그를 신하로 삼았기에 어렵지 않게 천하를 얻을 수 있었지요. 환공도 관중에게 가르침을 받은 뒤 그를 신하로 삼았기에 패자[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지요. 지금 천하의 형세를 보면 영토의 크기가 고만고만하고 임금의 덕도 거기가 거기입니다. 이런 이유는 바로 임금이 신하를 가르치려 들고 신하에게 가르침 받기를 싫어하는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 찔: 제게 해주신 이 말씀을 경추씨에도 그대로 해주셨겠죠?


■ 맹: 그래요! 그리고 내처 이 말로 매듭을 지었죠. "탕임금도 이윤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고, 환공도 관중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소. 내 이 둘을 능가할만한 국량[능력과 포부]이 있는데, 어찌 임금이 나를 함부로 부를 수 있다 말이오."


■ 찔: 선생님의 말씀에 경추씨는 아무 말 못 했겠지요?


■ 맹: 그렇더이다.


■ 찔: 그런데, 선생님, 외람되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일견 수긍이 되면서도 일견 의문이 생깁니다. 질문을 드려도 괜찮을지요?


■ 맹: 무슨?


■ 찔: 우선은 선생님께서 정말 몸살이 있었던가 하는 점입니다. 왕과의 회동 날 선생님께서는 갈 채비를 갖추고 계셨는데 왕이 사자를 통해 몸살 때문에 회동이 어려우니 내일 보면 어떻겠냐고 하자 선생님께서는 바로 몸살 때문에 어렵겠다고 거절하셨거든요.


■ 맹: 그건 인터뷰하시는 분이 알아서 판단하세요. 다만 이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고 싶군요. 위나라 문후가 사냥 몰이꾼과 사냥을 약속한 날, 마침 궁에서 연회가 있었어요.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갑자기 문후가 사냥 몰이꾼에게 약속 취소를 하러 가야겠다고 자리에서 일어섰어요. 신하들이 다 말렸죠. 그러나 문후를 게의치 않고 바로 가서 약속을 취소했어요. 위문후가 위문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입니다.


■ 찔: 위문후는 일개 사냥 몰이 꾼과의 약속도 함부로 어기지 않았는데, 제선왕은….


■ 맹: 잘 이해하시는군요.


■ 찔: 선생님, 그렇다 하더라도, 제선왕은 나름대로 선생님께 최대한 예를 갖춘 것 같습니다. 회동 일자를 어기긴 했지만 사정[몸살]을 말한 뒤 양해를 구했고, 또 다음 날에는 선생님의 건강이 걱정되어 약까지 보내오지 않았습니까? 이만하면 왕으로서 나름대로 최대한 예우를 해드린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는 불소지신까지 언급하시며 왕을 타박하시는 듯한 말씀을 하시니 솔직히 좀….


■ 맹: 솔직히 좀 너무한 것 같다? (웃음)


■ 찔: 네. (약간 멋쩍은 표정)


■ 맹: 앞에서 했던 말을 다시 해야겠군요. 그전에 알아둘 것은 나는 임금에게 일정한 녹을 받으며 직책을 수행하는 신하가 아니란 점입니다. 비록 임금에게 거주지와 생활비를 제공받고 있긴 하지만 내가 받는 거주지와 생활비는 왕께 자문해주는 대가이지 어떤 공무를 수행하는 대가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왕과 나의 관계는 동등하다고 까지는 아니라 해도 수직적 관계는 결코 아닙니다. 나의 자문을 필요로 하는 것은 왕이지 내가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공경의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답은 자명하지 않습니까? 옛날 주공은 현재[어진 인재]를 얻기 위해 밥을 먹다가도 마중을 나갔고 머리를 감다가도 마중을 나갔습니다. 이런 정도의 정성은 보여야 현재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겠어요?


■ 찔: 그렇군요. (수긍을 하면서도 약간 아쉬운 표정) 선생님, 한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지난번 제선왕과의 만남에서 "공문[공자 학당]에서는 제나라 환공과 진(晉)나라 문공의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번에 제나라 환공과 관중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은데….


■ 맹: 흠~ 그것 역시 인터뷰하시는 분이 알아서 판단하시죠. (웃음) 다만 이 말은 하고 싶군요. 왕도에 대해서 말하기도 벅찬데 굳이 패도까지 거론할 필요가 있을까요?


■ 찔: 선생님의 처신법이랄까 처세법이랄까를 보면 겉으로는 이해가 어렵지만 속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솔직히 완벽하게 이해가 되는 건 아니지만요. (웃음) 세상을 살다 보면 남들이 보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정작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남들이 이해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 그 사람의 입장에 서보면 그 사람의 입장이 이해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점에서 처신법이랄까 처세법이랄까 하는 것은 자신의 이해와 타인의 이해가 상충되지 않고 적절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처세나 처신이 어려운 것도 같고요.


■ 맹: 일리 있는 생각이에요. 그러나 그런 중용적인 태도는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그것 또한 하나의 치우침일 수도 있어요. 중용은 결코 어정쩡한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 찔; 선생님께서 처세나 처신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지요?


■ 맹: 사람은 자신 스스로를 업신여긴 이후에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게 됩니다. 반대로 자신 스스로를 귀하게 여긴 이후에 남에게 귀히 여김을 받게 되지요.


■ 찔: 귀히 여김이 자만으로 흐르면 안 되겠지요?


■ 맹: 그렇지요. 그래서 처세에는 수양이 필요한 것입니다. 비하나 자만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말이지요.


■ 찔: 그렇군요. 선생님, 오늘은 이만 여기서 줄이고자 합니다. 혹 외람된 질문이 있었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 맹: 이런, 그런 태도는 자기 비하예요. (웃음)


■ 찔: 그런가요? (웃음) 아직 수양이 될 돼 그런 것 같습니다.


■ 맹: 잘하고 있습니다. 자신감을 가지세요.


■ 찔: 감사합니다. (웃음)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 맹: 그래요. 편히 쉬고 내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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