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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찔레꽃 Aug 07. 2022

궁핍을 관통한 사람들

소설 『세 남자의 겨울』(이병욱 지음)을 읽고


“세상 사람들은 시가 시인을 궁핍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시인치고 현달한 자 적고 대부분 궁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궁핍은 시인의 시를 정밀하게 만들 뿐 궁핍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정밀한 시는 대부분 궁핍에서 나왔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하는 것뿐이다.”     


구양수의 ‘매성유시집서’의 일부분이다(문단을 바꾸고 의역함). 시인(문인)이라고 해서 경제적 문제를 비껴갈 수는 없다. 그러나 시인(문인)에게 경제적 문제는 다른 이들과 다른 차원이 있는 것 같다. 외려 궁핍이 시(작품)를(을) 더욱 단련시키는 담금질의 역할을 한다는 것. 구양수는 그것을 간파한 것이다. 구양수는 그것을 대부분의 훌륭한 시가 궁핍한 시절에 지어졌다는 것으로 입증한다. 틀린 주장이 아니다. 시성 두보의 시가 그의 궁핍한 시절에 지어졌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를 실증할 수 있다.     


‘세 남자의 겨울’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떠오른 생각이다. ‘겨울’은 궁핍이다. 계절적으로도 그렇고 그것이 상징하는 바도 그렇다. 이 소설은 그 궁핍을 관통하는 세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세 남자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문인 혹은 예술인이라는 점. 두 사람은 소설 혹은 그림에, 한 사람은 연극 혹은 문인 선양에 힘썼다. 그들에게 궁핍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구양수의 말처럼 그들을 담금질했다. 한 사람은 주목받는 소설가가 됐고, 한 사람은 비록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사후 문인 선양의 선구적 역할을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고, 한 사람은 이제 주목받는 소설가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담금질했던 궁핍을 그들은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다. 주목받는 소설가가 된 한 사람은 절대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한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떴지만, 궁핍으로 하여 받은 마음의 상처로 평생을 힘들게 지냈으니, 그 또한 궁핍을 달가워할 리 없다. 주목받는 소설가로 부상하는 이는 어떨까? 전업 작가의 길과 생활인[직장인]의 갈림길에서 끝내 생활인의 길을 택한 것을 보면 그 역시 궁핍을 증오하면 증오했지, 달가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참으로 모순된 일이다. 그들을 키워준 것이 궁핍이었건만, 그 궁핍을 달가워하기는커녕 증오하기까지 하려 하니 말이다.     


이 소설은 실화에 약간의 픽션이 가미된 소설이다. 거의 실화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주목받은 소설가가 된 사람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최근에 타계한 이외수이고, 연극 혹은 문인 선양에 힘썼던 이는 이 소설의 작가 부친이며, 주목받는 소설가로 부상하고 있는 이는 이 소설의 작가인 이병욱이다. 이 소설엔 궁핍의 시대를 관통하는 세 문인 혹은 예술인의 모습이 명징(明澄)한 문체로 정밀하게 묘사돼있다. 시대적 배경은 70년대이다. 이들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작가가 묘사하는 궁핍한 시절의 내용에, 문학과 예술에 공감하건 하지 않건, 과할 정도로 몰입하지 않을까 싶다. 명징한 문체로 정밀하게 묘사돼있다는 게 결코 허언이 아니다. 70년대를 거대 담론이 아닌 예술 담론으로 그린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다.     


소설이 팔리지 않는 시대라고들 한다. 맞는 말 같기도 하고, 틀린 말 같기도 하다.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책을 읽지 않으니 소설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기에 맞는 말 같고, 공감되고 문제의식을 갖게 하면서 가독성 높은 소설이 드물기에 틀린 말 같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이 책을 잡고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단숨에 읽었다. 가독성이 좋다는 증거. 이 책의 공감 정도와 문제의식은 위에 말한 대로이다. 끝으로 한 가지 더. 이 작가 책의 남다른 면은 작품을 읽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이건 순전히 나만의 특별 체험일 수도 있다).     


좋은 소설이다. 내 책은 아니지만,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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