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기보다는 모자란 것이 낫다
과유불급(過猶不及). 과한 것과 모자란 것은 같다, 란 뜻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굳이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모자란 것'을 택하겠다. 이유는? 그냥, 삶의 경험상. 하하. 하여 나는 '과유불급'보다 '과불여불급(過不如不及, 지나치기보다는 모자란 것이 낫다)'을 선호한다.
서산 시청 앞 선정비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비가 하나 있다. '군수류후민선정비(郡守柳侯旻善政碑)'가 그것.
류민은 광해군 때 서산군수를 지낸 인물로 염초를 많이 굽고 군량을 넉넉히 준비하였다 하여 특진한 인물이다. 사관(史官)은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닌데 이조에서 은전(恩典) 대상자로 올렸다고 비판했지만, 어쨌든 은전을 받은 인물로 역사에 올라 있으니(이상 조선왕조실록 기사), 후손에겐 자랑스러운 조상으로 보일만도 하다. 하여 먼 후일 그의 후손 되는 광수(光秀)라는 이가 조상의 선정비를 수선(修繕)했다. 그리고 선정비 측면에 그 내용을 기록했다. '소화 17년 임오 8월 일 15세손 광수 수선(昭和十七年 壬午 八月 日 十五世孫 光秀 修繕)'. 소화 17년은 서기 1942년이다.
오호라, 소화라니! 조상은 필경 임진왜란을 겪어(광해군 때 지방관을 지냈으니 임진왜란을 겪었을 것은 불문가지) 왜놈이라면 이가 갈렸을 텐데, 그 후손 되는 이가 일제강점기 일본 천황의 연호를 써가면서 조상의 선정비를 수선하다니… 조상님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 아닌가! 조상을 애모하는 마음이 지나쳐 되려 조상을 욕되게 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차라리 수선하지 말고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더 낫지 않았겠는가! 역시 '과불여불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