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코스모스는 역시 길에 있어야 어울린다. 이런 길에 있어야 할 코스모스가 마당 한 곁에 가득하다(사진). 아내의 고집 탓. 그런데 환한 햇살아래 미풍에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면 나도 모르게 아내에게 품었던 서운한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코스모스를 대하면 대학 시절의 한 교수님이 생각난다. ‘안조은’교수님. 원 함자는 '안종운'인데, 학생들이 놀리느라고 만든 별칭이었다. 좋게 말하면 자기 생각 자기 논리가 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자기 자랑이 심한 분이었다. 이분이 생각나는 건, 이 분의 글 중에 특별한 코스모스가 등장하기 때문. “나는 영원히 코스모스를 미워하렵니다.” 어머니 상을 당한 뒤 마을 길에서 접한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그 꽃이 그렇게 밉더라고 했다. 이 분이 쓴 효에 관한 논문에 나오는 일절이다.
당시는 ‘와, 효자시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외물은 내면의 반영. 내면이 슬프면 외물도 슬프게 느껴지는 건데,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차 있었다면 평소 예쁘게 보이던 꽃도 슬프게 보였으련만, 하늘거리는 꽃을 그 자체로 아름다이 봤다면 마음속에 슬픔이 가득 고이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효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위선적으로 등장시킨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코스모스의 꽃말은 소녀의 순정. 신이 세상을 만들고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 꽃을 만들기로 했는데, 제일 처음 만든 것이 코스모스란다. 코스모스는 질서·조화·우주의 뜻도 갖고 있다. 코스모스의 꽃말과 뜻으로 보면, 코스모스가 밉게 보이는 날이 어쩌면 생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 미움이 가득하여 코스모스가 밉게 보인다면, 더 이상 순수하지 않고 삶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의 반증. 그렇다면 더 이상 세상에 머물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겠는가. 아니, 머물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그게 우주의 조화에도 어울리는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