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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미안쿠먼

by 찔레꽃

"처음은 남들보다 좀 앞서죠. 중반까지도 그럭저럭 해요. 하지만 그 이상은..."


세 식구가 저녁 외식을 하고 잠시 찻집에 들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요즘은 아이한테 이야기를 하기보다 주로 듣는다), 아들아이가 꺼낸 말이다. 축구도 그렇고 당구도 그렇고 탁구도 그렇고 영화 평론도 그렇고... 죽 나열을 하면서 처음 시작할 때는 남보다 조금 앞서며 중간까지도 그럭저럭 하는데 그 이상은 진척이 없단다. 때문에 일반인들과 함께 할 때는 해당 내용에 대해 그럭저럭 이야기를 하지만, 전문인을 만나면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한다고 했다. 상위로 올라서지 못하는 자탄 비슷한 넋두리를 한 것이다.


"뭐,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숱한데..." 애써 위로의 말을 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 아들의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내가 흘려 들었거나 아니면 별 신통치 않은 대답을 들은 것 같다.


일찍이 공자께서 "상층의 사람과 하층의 사람은 변화가 어렵다"는 말씀을 한 적이 있다. 양자의 중간층만이 변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데, 그 변화 가능성은 위로도 생길 수 있지만 아래로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간층, 이른바 보통 사람에게는 이 두 가지가 다 어렵다. "아니, 위로 못 올라가는 거야 그럴 수 있지만 아래로 내려가는 거야 뭐 어려워?"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아래로 내려가면 '왜 그때 그렇게 못했을까?'라는 후회가 들기 때문이다. 위로 올라가는 것은 여러 희생을 감수해야 하고 꼭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기에 해내기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고 말이다. 한마디로 중간층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다. 공자께서 상층과 하층의 사람은 변화가 어렵다고 하셨지만, 내 생각에는, 중간층의 사람도 변화가 어렵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다.


고전번역원 시험에 연거푸 떨어지고 나니, '과연 내가 이 시험을 계속 봐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든다. '연금 받아 생활하는 늙은 놈이 남은 생을 즐겁게 보낼 일이나 생각할 것이지 뭐 하러 머리 싸매는 일을 뒤늦게 한다고 지랄이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면접을 볼 때 지원 동기를 묻기에 "남은 생을..." 어쩌구저쩌구 했는데, 이 말이 진심이었다면 당연히 내년에 또 도전하는 것에 일말의 회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시험에 대해 회의가 드는 걸 보면 면접관에게 했던 말이 진심이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럴싸한 외피(나, 고전번역원 나왔어)를 구하려고 했던 것이지 진정으로 고전 번역을 남은 생의 업으로 생각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더도 덜도 없이 딱 중간층인 것 같다. 위로 올라서기 위한 희생감수에는 겁이 나고, 그럭저럭 편안히 지내면 생을 마감할 때 '왜 그때 그렇게 못했을까?'라는 후회가 들 것도 같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은 아들아이의 말에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됐는데, 어쩌면 아들아이의 고민은 내가 물려준 좋지 않은 유전자 탓인지도 모르겠다. 미안쿠먼,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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