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照入閭巷 저녁볕 동리에 드는데
憂來誰共語 근심은 누구와 함께 이야기할까?
古道少人行 옛길에는 다니는 이 적은데
秋風動禾黍 가을바람이 벼와 수수를 흔든다
경위(耿湋)의 「추일(秋日)」이다. 쓸쓸한 가을 심사를 읊었다. 1·2구에서는 직접적으로 쓸쓸한 심정을 고백했고, 3·4구에서는 풍경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쓸쓸한 심정을 드러냈다. 3·4구의‘옛길[古道]’‘벼와 수수[禾黍]’는 주로 회고시에 사용되는 단어로, 단순 경물(景物)을 넘어 시간의 경과에 따른 허무함을 내포한 시어이다. 3·4구의 풍경 묘사는 1·2구의 쓸쓸한 심경 고백을 단순 반복한 것이 아니고 심화 강화시킨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시를 되풀이해 읽다 보면 익숙한 시 한 편이 떠오른다. 김광균의 「추일서정(秋日抒情)」. 회화적 기법으로 가을날의 서정을 그렸다고 배웠는데, 김광균의 「추일서정」은 경위의 「추일」을 현대적 버전으로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이 든다. 혹, 모를 일이다. 김광균 정도면 한학에 대한 소양이 있을 터이고 그렇다면 그도 「추일」을 읽었을 가능성이 크고 그것이 알게 모르게 시작에 활용되었을는지도. 과한 생각?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