搖頭瞬目逞精神 요두순목령정신 머리 흔들고 눈 깜박여도 정신 쏙 빠지니
諦視誰能辨贗眞 체시수능변안진 자세히 본들 참과 거짓 뉘 능히 분별하리
莫作劉郞癡絶想 막작유랑치절상 아서라! 한 무제처럼 어리석은 생각으로
帷中遙望李夫人 유중요망이부인 장막 안서 멀리 이 부인 보려 함을
김윤식(1835~1922)의 「관활동사진(觀活動寫眞, 활동사진을 보고)」이다. 구한말 관리가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느낀 점을 쓴 것이기에, 영상시대인 오늘날 그의 느낌이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그저 신기해하거나 놀랐을 것 같은데, 이 이는 그것을 넘어 참과 거짓이 혼재한다는 모호성 그리고 그것이 주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어 좀 색다르다. 이 이가 지적한 것은 영상시대인 오늘날 우리가 늘 경계해야 하는 점인데, 그것을 영상물이 등장한 초기에 간파했다는 점이 놀랍다. 시 속의 고사는 한 무제가 사랑하는 부인 이 씨를 잃고 상심타가 방사(方士)의 도움으로 이 씨의 혼령을 만났다는 이야기다.
갑자기 왜 이리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겨? 아, 그게, 어제 우중에 보령 천북의 청보리밭 구경을 갔다 왔는디 기분이 끌끌해서 그렇지라. 뭔 일이 있었간디? 아, 글씨, 청보리밭 소개 영상과 사진을 보니께 그냥 막 가보고 싶어지더랑게요. 지가 붙여놓은 사진 한 번 보이소. 아니 가고 싶게 생겼는가? 그렇구만. 장쾌한 청보리밭을 가로지른 황톳길을 걸으면, 설령 우중이라 해도, 무척 낭만적인 기분이 들 것 같구먼. 그런디, 그런 기분을 못 느껴서 그런감?
그렇지라. 지랄(앗, 죄송), 장쾌하긴 개뿔, 그냥 그런 넓이고, 길은 우중이라 질척거리고, 무엇보다 가로질러 걸어가는 길이가 증말 짧더랑께요. 거기다 입장료는 츤 원짜리 6개나 받더라고요. 소개 영상에는 그런 말은 즌혀 없었는디 말이지라. 거, 붙여 놓은 사진 꼭대기에 건물 있지라, 그게 폐목장이었는디 지금은 카페로 변했어라. 이것도 좀 거시기합디다요. 폐목장이 너 운치있을 것 같은디. 붙여 놓은 사진에 보면 교회 건물 나온 사진 있지라. 고것이 카페 안에서 찍은 건디, 사진 만으로 보면 꽤 삼삼하지라, 근디 실제로 보면 좀 거시기혀요.
엄청 실망스러워겠구먼. 그렇지라. 그래서, 이 사설을 풀어놓은 거 아니것소. 근디 이 사람아, 지금이 영상시대고 사실과 허구의 구별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암시로 왜 고로콤 속은 것이여. 긍께요. 지도 지 자신이 원망스럽구만이라.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 바보병은 죽지 않으면 못 고친다는 게 과시 틀린 말이 아닌가봅서. 아, 이 사람아, 뭐 그 정도 실수 가지고 그렇게까지…. 자네처럼 일상의 평범한 실수야 애덜 장난 같은 거제. 문제는 그런 무분별이 사회 문제되는 거 아닌가베. 작금의 대통령 파면 사태도 그 뿌리는 영상물의 실제와 허구를 구별 못하는 무분별에서 비롯된 거 아닌가베. 왜곡된 영상물을 일말의 의심 없이 신줏단지 모시듯 믿은데서 비롯된 거 아닌가 말이여. 물론 그런 걸 만든 이들이 더 나쁘긴 하지만서도. 듣고 보니 그러네요 잉.
그래, 썰 좀 풀고 나니 속이 좀 가벼워진겨? 아, 야, 그렇구만요. 담부턴 좀 더 살펴 현란한 영상물에 현혹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겄어라. 그려, 그럼 됐지! 자, 우리 크게 한 번 웃드라고. 우하하하!
근디 김윤식은 좀 거시기한 인물아녀? 야, 좀 거시기한 인물이지라. 그 거시기가 읎었으면 저 시가 더 빛났을 것 같은 생각이 들드만요. 그려, 이완용도 명필이었다고 하니께. 허여간, 사람이 먼저여. 됨됨이가 거시기하면 나머지는 말짱 꽝이랑께. 백번 지당한 말씀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