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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나들이

by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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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벚꽃 엔딩의 아쉬움을 달래려 팔봉산 개심사로 향했다. 다른 곳은 이미 꽃잎이 졌지만, 이곳은 탐스러운 겹벚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기 때문. 상춘객의 발길이 잦을 것을 예상하고, 아는 이들만 아는 보원사지 길을 택했다. 개심사 꽃구경만을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멀고 험한 산길이다.


보원사지를 에워싼 상왕산의 푸른 기운이 멀리서부터 느껴졌다. 솜털처럼 부드러운 연초록 물감이 번져나가 숲에 발을 들이는 순간 온몸에 싱그러운 연초록 색이 스며들 듯했다. 넓은 보원사지에는 외로이 선 탑과 당간지주 귀수비만이 있어 쓸쓸한 풍경을 자아낼 법한데 아련한 연초록 배경 덕분인지 오히려 풋풋한 생기가 감돌았다.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었다. 지난 겨울 팔봉산에서 꼬리뼈를 다친 후 산행을 멀리했지만, 겹벚꽃의 유혹 때문에 산행을 아니할 수 없게 됐다. 대신 든든한 동반자를 택했으니, 바로 참나무 지팡이다. 몇 해 전 산에서 우연히 얻은 이 녀석은 집 주변 산길을 걸을 때 훌륭한 조력자이다. 처음으로 먼 산길에 나섰는데,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제법 쏠쏠한 도움을 주었다.


산 중턱 쉼터에서 개심사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 낙엽이 쌓여 다소 미끄러웠지만, 지팡이 덕분에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쯤 걸었을까,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라는 낯선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이전에는 쭉 직진했던 것 같은데…. 한참을 내려가니 역시나 전에 다니던 길이 아니었다. 순간, 산에서 길을 잃었던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라 살짝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과 나뭇가지에 이따금씩 매달린 ‘내포숲길’이라 적힌 표찰이 있어 다소 마음이 놓였다. 예전에 비해 꽤 오랜 시간이 걸려 개심사에 도착했다. 새로 조성된 길이었던 것이다. 미리 알았더라면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걸었을 텐데, 알 수 없는 길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산행이 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개심사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물건을 사고팔지 않을 뿐, 마치 거대한 시장을 방불케 하는 혼잡함 그 자체였다. 개심사는 늦게 피는 겹벚꽃으로 유명하다. 다른 곳은 이미 꽃이 졌거나 시들어가지만, 이곳의 벚나무들은 탐스럽고 화려한 꽃망울을 활짝 터뜨리고 있다. 특히 오래된 나무들이 많아 꽃송이가 풍성하고, 붉은색, 분홍색, 청색 등 다채로운 색감은 눈을 더욱 즐겁게 한다. 상춘객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꽃을 배경 삼아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보행에 불편을 줄 정도로 사진 촬영에 몰두하는 모습은 괜스레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이러면 안 되지, 너그럽게 봐야지.’ 나처럼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 바쁜 일상 속에서 모처럼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의 설레는 마음을 옹졸하게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애써 마음을 다독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하늘을 배경으로 겹벚꽃 사진 두어 장을 조심스럽게 카메라에 담았다. 예의 버릇처럼 대웅보전 뒤편에 가 절 뒷모습을 살폈는데, 정갈한 느낌이 없었다. 허름한 화분과 널브러진 청소 도구가 눈에 거슬렸다. 많은 인파에 절집도 잠시 정신을 놓은 듯했다. 개심사(開心寺)라는 이름처럼 마음을 여는 것은 좋지만 방만함에 이르는 것은 경계해야 할 텐데…. 작은 아쉬움이 밀려왔다.


혼잡한 인파를 뒤로하고, 익숙한 산신각 쪽 옛길(?)을 따라 다시 보원사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길을 다시 만나니 묘한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지팡이가 없었다면 꽤나 힘들었을 오르막길을 한결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다. 길 중간에 유난히 가냘픈 흰 철쭉이 눈에 띄었다. 화려한 겹벚꽃에 비해 왠지 모르게 소외된 듯한 모습이라 가엽게 보여 카메라에 담았는데, 사진을 찍고 나니 방금 전의 여윈 모습이 이젠 오히려 웃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하하.


용현 휴양림 길을 따라 다시 보원사지에 도착했다. 개심사에서 마주했던 어수선한 풍경과 고즈넉하기 그지없는 보원사지가 대비되어 마치 천국과 지옥을 오간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스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북적이는 번영의 길을 지향하지만, 때로는 반대편의 고요한 소박의 길을 걷는 것도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외로움을 감내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고요한 보원사지를 감싼 상왕산의 연초록빛은 따스한 햇살 아래 더욱 선명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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