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園日暮亂飛鴉 양원에 날 저물자 까마귀 나는데
極目蕭條三兩家 끝 간 데 없이 쓸쓸하고 인가도 두세 채뿐
庭樹不知人去盡 뜨락의 나무들 사람들 다 떠난 줄 모르고
春來還發舊時花 봄 오니 옛 시절 꽃을 다시 피운다
잠삼(岑參)의「산방춘사(山房春事)」. 화려했던 옛 정원을 돌아보며 덧없는 인사(人事)의 허무함을 노래하고 있다. 인사에 상관없이 해마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나무를 통해 인사의 허무함을 극대화시켰다. 양원(梁園)은 한 문제의 아들 양 나라 효왕이 만든 정원으로, 주위가 3백 여리였다고 전한다.
덕산에서 친목 모임을 가진 다음 날 아침, 산책 길에 한 집(사진)을 만났다. 무 한 편이 잘려나간 듯 도로 옆에 바로 흙 벽채를 드러내놓고 있는 집으로, 대문에는 자물쇠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고, 우편함에는 수령치 않은 우편물들이 뚱한 얼굴로 꽂혀 있었으며, 담장가에는 풀어헤친 여인네 머리 같은 녹음을 드리운 나무가 시무룩하게 서있었다. 필시 빈집일 터였다. 집을 마주하니, 문득 잠삼의 시가 떠올랐고 그가 느꼈을 허무함과 쓸쓸함이 내 마음에도 밀려들었다. 저 빈집이 황폐한 양원(梁園)과 규모는 다를지언정 잠삼이 느낀 심정과 내가 느끼는 심정에 무슨 차이가 있으랴.
오늘 아침, 덕산에서 보았던 빈집에 대한 느낌을 잠삼의 운을 빌어 내 식으로 표현해 보았다. 첫 구에 등장하는 까마귀는 운을 맞추기 위해 가상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나저나 나무의 바램처럼(실은 내 바램이지만), 집주인은 돌아올런지? 기대하기 어려운 바램일 것이다.
寂寥空宅曉鳴鴉 쓸쓸하고 텅 빈 집 새벽부터 까마귀 울고
斷續書札滿故家 문 앞엔 끊겼다 이어진 편지들 가득 꽂혔네
墻畔濃陰垂古樹 담장 가 짙은 그늘 드리운 고목 있나니
年年開盡待歸花 해마다 꽃 피우며 주인 돌아오기 기다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