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날씨가 꿉꿉했다. 비도 추적추적 내렸다. 몸이 늘어졌다. 이럴 때는 약간 짜릿 화끈한 것으로 몸을 일으켜야 한다. 안 그러면 물 간 오징어처럼 된다. 커피를 한 잔 먹어볼까, 영화를 한 편 볼까? 커피는 속이 아프니, 영화로! 하야 요즘 핫한(?) '신명(神明)'을 보았다.
프롤로그 부분에 순전히 창작이라고 나오지만 누가 봐도 전직 대통령 부부를 묘사한 영화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들 부부의 무속 엽기 스토리의 총합(總合)이다. 시사에 조금만 관심 있는 이라면 다 아는 내용이다 보니 오컬트 장르이건만 하나도 짜릿하지 않았다. 극장을 나서면서 "관람료, 돌려줘"를 연발했다.
사실 이 영화를 본 건 물 간 오징어 상태를 떨치려 한 것이었지만, 내심 의무감도 있었다. 윤 정권에 대한 심판성 짙은 영화로, 한 사람이라도 더 봐줘야 애써 만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는 달성했으니, 그것으로 만족!
그런데 영화 내용은 짜릿하지 않았지만 제목 '신명(神明)'은 나름 짜릿했다. 호기심을 일으켰던 것이다. (호기심이 짜릿과 연결되는 게 좀 이상하기 하지만.) 신명은 흔히 천지(天地)와 결합하여 천지신명이란 말로 많이 사용된다. 신명의 사전적 정의가 '하늘과 땅의 신령'인 것은 이런 이유다. 그런데 살짝 의문이 생긴다. 왜 '신' 뒤에 '명'이 붙은 걸까? 그냥 신이라고만 해도 의미가 충분한데. (이하 이 단어에 대한 흰소리를 까부린다.) 한자어는 짝을 맞추길 좋아한다. '천지신'이라고 하면 뭔가 불완전하다. '천지신명'이라고 하면 안정감이 있다. 짝이 맞기 때문이다. 그럼, 명은 무슨 의미로 붙인 걸까? 그건 신의 특징을 묘사한 말이 아닐까 한다. 명은 '밝다'란 뜻이다. 신이란 음침한 존재가 아니라 밝은 존재이며 어디에나 깃든 존재이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것 아닐까 싶다.
김수복이란 분이 성서를 좀 더 살갑게 읽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천지신명으로 표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낸 적이 있다. 전통적으로 신을 일컫던 용어이기도 하고 그 의미가 "천지를 지어내고 모든 존재를 지어내고 만물 안에 아니 계신 데 없이 계시다는 존재의 근원, 존재 자체라는 존재를 가리키는 의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용문에서 천지를 뺀 나머지는 '신명'을 부연 설명한 셈인데, 나의 흰소리를 대변해 준 듯한 느낌이다. 하하.
영화 '신명'의 주인공은 신을 모독한 자이다. 신은 명(明)한 존재인데 암(暗)한 존재로 전락시키고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도 그렇고 실제 인물도 신의 노여움을 사 나락에 떨어진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 "'신명'을 신명 나게 봤다."고 말하는 이들이 심심찮게 있다. 당연히 틀린 말이다. 후자의 신명은 순우리말로 '흥, 멋, 들뜸' 정도의 의미이거나, 펴서 밝힌다는 의미[伸明]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결코 흥겨운 내용이 아닌데 어떻게 신명 나게 봤단 말인고.
*영화 포스터를 오려오는데, 저작권 문제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오금 박는 문구가 있다. 마땅히 달리 구할 길이 없어 그냥 썼다. 천지신명이시여, 저들에게 너그러움을 베풀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