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입장 좀 헤아려 주소

by 찔레꽃
20250622_182123.jpg
20250622_182028.jpg
20250622_182042.jpg




'헉, 이게 뭐여? 잠수함 설계돈가? 그리고 이건 또 뭐여? 무타공, 좌수문, 우수문, 데드볼트... 오매, 정신없어!'


현관문이 맛이 가는 바람에 도어록을 교체하게 됐다. 아내가 주문한 인터넷 제품이 도착해 포장을 뜯고 설치 설명서(사진)를 보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복잡하기 그지없었던 것. 게다가 사용되는 용어도 너무 생소했다. 분명히 한글인데, 내용을 알 수 없는 외계어 같았다. 복잡하고 어려운 건 딱 질색팔색인 단무지에겐 너무도 괴로운 설명서였다.


그러나 아니할 수 없는 일이라 열심히 읽고 이해하여 도어록을 교체했다. 거의 반나절은 소비한 것 같다. 그런데 문을 여닫을 때마다 이상한 경고음이 들렸다. 사용 설명서를 보니 데드 볼트가 작동 안 되는 경고음으로 도어록을 재조정해야 하는 사항이니 설치 기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나와 있다. 오 마이 갓!


그런데 저 복잡한 사용 설명서를 보며 막상 도어록을 설치해 보니, 지극히(?) 단순했다. 왜 반나절이나 걸렸는지 이해가 안 갈 지경이었다. 어쩌면 설치하다 외려 망가뜨리지나 않을까 하는 부담감에다, 설명서대로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일일이 확인하느라 걸린 지체 시간, 거기다 미흡한 공구 때문에 겪은 불편 때문에 그러지 않았나 싶다. 어쨌거나 한 번 설치해 보니 별거 아녔다.


이런 바람 채운 풍선 같은 자만심에 설치 기사를 부르지 않고 그냥 해체한 뒤 원점에서 다시 조립해 보면 뭔가 해결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여 해체 후 다시 설치하려는데, 바닥에 내려놓았던 고정 핀이 보이지 않았다. 핀 하나지만, 이게 없으면 절대 안 된다. 순간 고민스러웠다. 이걸 구하러 차를 몰고 밖에 나갔다 와야 되나? 옆에는 해체된 도어록이 헤벌레 나자빠져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에잇!' 소리를 지르고 차를 몰고 시내로 달렸다. 열쇠점에 가서 새 제품을 사면서 설치까지 부탁했다. 기사 분이 와서 10분이 채 안되어 설치를 완료했다!


아내가 마침 친정에 간 데다 제품을 설치하면서 알게 모르게 누적된 짜증들이 순간적으로 폭발하여 비용 여부를 불고하고 일을 저질렀다. 비용 좀 아낀다고 하다가 외려 배 이상의 비용이 들었다.


만약에 제품 설명서가 간단명료하고 용어도 평이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 설치하는데 별반 짜증이 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면 설령 설치 후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았더라도 순간적으로 폭발하여 손해 나는 짓을 하는 우는 범하지 않았을 것 같다. 지가 재주 없어 그런 걸 가지고 괜히 남 탓 한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뭐,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고, 물건을 사서 설치하는 입장이다 보니 불만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저 잠수함 같은 설명서는 그야말로 공급자 중심의 설명서이지 수요자 중심의 설명서가 아니다. 공급자들이야(설치 기사를 포함하여) 늘 접하는 것이니 거부감이 없을 테지만 수요자들이야 가뭄에 콩 나듯이 접하는 물건이다 보니 그 설명이 낯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공급자가 아니고 수요자 아닌가? 그러면 수요자에 맞춰 제품 설치에 대한 설명을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잠수함 설계도 같은 설명서보다는 설치 장면을 손쉽게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 준다거나 용어도 풀어서 이해하기 쉬운 말로 한다든가 말이다. '무타공' 보다는 '문에 구멍 새로 뚫지 않고 그대로 사용 가능함'이라고 하는 게 나을 것이고, '우수문' 보다는 '오른쪽으로 여는 문'이라 하는 게 나을 것이며, '좌수문' 보다는 '왼쪽으로 여는 문'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이고, '데드 볼트' 보다는 '잠금 쇠막대'라고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공급자 중심 사고보다 수요자(국민) 중심 사고를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복지 혜택 같은 것도 그저 마련해 놓고 찾아오면 해주는 게 아니라 수요자가 주민번호만 입력하면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이 무엇이고 어떻게 신청하면 되는지 마련해줘야 할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이게 만들어진다면 정말 많은 이들이 놓치고 있었던 복지 혜택을 두루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철저히 수요자를 생각하는 입장에 있는 이이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현 여부는 차치하고 일단 그 말만이라도 상을 주고 싶은 심정이다.


익숙하게 알려진 그런 말이 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대통령의 사고가 저렇다면 앞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운명도 수요자 중심으로 바뀔 것이 틀림없지 않을까 싶다.


갑자기 도어록 설치 실패 얘기를 하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하여간, 요는 공급자(그것이 물건을 제조하는 사람이든 관청에 있는 이들이든 간에)는 앞으로 수요자(물건을 사는 사람이든 일반 시민이든 간에)의 입장을 좀 더 헤아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야 서로 그야말로 윈윈 하지 않겠는가. 소비자가 만족해야 공급자도 만족스럽지, 소비자가 만족하지 않는데 공급자가 흡족할 리는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도어록, 오 마이 갓, 윈윈 등은 일상적으로 쓰는 외래어이다. 하여 무심결에 사용했는데 이상한 설명어를 질타한 주제에 그런 말을 쓴 것은 뭔가 체면 구기는 일인 것 같다. 반성!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머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