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는 도둑질을 했다. 가슴이 조마조마해 혼났다. 훔친 물건을 들고 빠져나오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수확치 않은 늦벼 있고 / 여기 아니 거둔 벼 묶음 있으며 / 저기 버려진 볏단 있고 / 여기 버려진 이삭 있네 / 이것들은 과부의 몫이라네"
시경 '대전(大田)'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대전'은 농사짓는 이들이 전주(田主)의 풍작을 축하하는 노래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기보다는 희망을 노래한 시가 아닐까 한다. 여간해서야 농사짓는 이들이 주인의 풍작을 노래하겠는가. 애써 농사지은 수확물 대부분을 전주가 가져가는데 말이다. 여하간 이 노래는 전주가 농사짓는 이들의 노고에 고마워하는 노래인 '보전(甫田)'편에 답가 형식으로 지어진 노래이다('보전'의 노래 또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기보다는 이 역시 희망을 노래한 시가 아닐까 한다).
이 노래에서 재미있는 것이 위 소개 대목이다. 저 대목을 보면 과부로 대표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위해 일부러 곡식을 남겨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얼마나 남겨놓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어려운 이들을 위해 곡식을 남겨놓은 것 자체는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이로 보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얼마간의 곡식을 일부러 수확치 않고 남겨놓는 것은, 적어도, 동양에서는 2천 년도 훨씬 더 된 풍습이라 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수확 후 버려둔 농작물을 어떤 이가 가져갔는데 농작물 주인의 신고로 절도죄에 걸리게 됐다는 보도를 접했다. 법상으로는 절도죄가 될 게 분명해 보이지만, 왠지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살기 어렵던 시절에도 유지됐던 풍속이 충분히 먹고살만한 시절에 버려졌다 생각하니 사람 사는 세상 같지 않아 서글펐던 것이다. 뭐, 백 번 양보해, 저간의 당사자간 무슨 사정이 있어 그리했을 것이라 생각도 해 보고, 농작물 도둑질이 기승을 부리니 일벌백계 차원에서 행해진 일일 거라 생각도 해봤지만, 그래도 영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 도둑질을 한 것이다. 동네 앞 대량 수확 후 버려진 감자들을 아침 녘에 몰래 가서 가져온 것이다. 대부분 알이 작아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에 버려둔 것인데, 20리터 종량제 봉투에 절반 가까이 담아왔다. 뉴스를 접한 후 도둑질을 해서 그런지 뒤통수가 살짝 화끈거렸고, 밭을 빠져나와서는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미풍양속을 실천했을 뿐, 도둑질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자위해 봤지만, 그다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저 '대전'편의 과부처럼 먹고살기 근근한 형편이 아니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미풍양속이라 해도, 남의 물건을 주인 허락 없이 가져오는 것이 도둑질은 분명한 도둑질일 터이니 말이다.
문득, 어렵던 시절 먹고살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곡식을 남겨 두었던 것은 인정의 발로이기 이전에 어떤 철학적 배경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인간의 모든 소유는 자연에서 도둑질해 온 것이 아닌가? 단지 인간이 정한 법이란 틀에서만 절도죄란 죄가 성립할 뿐이지, 대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 전부가 도둑인지라, 인간 모두가 죄인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자신의 수확물에서 얼마간을 먹고살기 힘든 이들을 위해 남겨 놓는 것은 분배의 정의에도 맞는 성싶고, 그것을 가져가는 이들 또한 자기 몫을 가져가는 것이라 생각해도 될 성싶다. 어쩌면 이런 철학적 차원에서 곡식을 남겨 놓았던 것이고, 형편이 어려운 이들은 그 곡식을 자연스럽게 가져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도둑질한 것을 변명하기 위해 좀 너절한 생각을 늘어놓았는데, 그래도 역시나 마음이 개운치 않다.
그나저나 그제 내가 도둑질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마나님 협박 때문이었다. 버려진 것 어차피 썩는데 갔다가 먹은들 무슨 상관있냐며, 일찍 일어나니, 남의 눈에 안 띌 때 주워오라고 한 것이다. 저녁 한 끼라도 얻어먹으려면 그 말을 아니 들을 수 없어 도둑질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 그토록 유순하던 옛날 마나님은 어디 가고 이토록 폭압적인 마나님이 내 앞에 계신 것인지? 오호라, 이것은 누구의 허물인가? 자업자득인가? 아니면, 마나님의 남성 호르몬 과다 분비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