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가 고환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하늘의 뜻이다 / 미우새 놈들 고역 중이다."
2월 9일부터 매일 아침 한시를 한 수씩 외우고 있다. 한시를 능란하게 지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런데 기억력이 딸려 외우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필사적으로 외우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에는 생각지 않았던 방법도 사용하고 있다.
어제 아침 외운 시는 왕주의 '숙소피역(宿疎陂驛)'이었다.
秋染棠梨葉半紅 추염당리엽반홍 가을 팥배나무 물들여 잎 반쯤 붉은데
荊州東望草平空 형주동망초평공 형주에서 동쪽 바라보니 풀 하늘과 연이어 있네
誰知孤宦天涯意 수지고환천애의 뉘라서 알리, 외로운 관리 머나먼 곳에 있는 마음을
黴雨瀟瀟古驛中 미우소소고역중 가랑비만 부슬부슬 옛 역에 내린다
시 전체를 반복해 읽으며 충분히 감상한 뒤, 다시 한 구절씩 외워가며 연결시켜 외워본다. 최종적으로 눈을 감고 시 전체를 외워본다. 그런데 이상하게 세, 넷째 구절이 잘 외워지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가만히 한글 음을 되뇌어보니 이렇게 외우면 쉽게 외워질 것 같다. 수지고환천애의라... 수지가 고환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하늘의 뜻이다! 수지 팬들이 들으면 기겁할 내용이지만 야하고 자극적이라 그런가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넷째 구도 한글음을 되뇌어보니 강도는 낮지만 수지 운운의 경우와 같이 스토리가 만들어져, 이 스토리로 외우면 쉽게 외워질 것 같다. 미우소소고역중이라... 미우새 놈들 고역 중이다! 미우새 출연자들이 들으면 불쾌할 내용이지만 이 역시 약간 자극적이라 그런가 머릿속에 어렵지 않게 들어온다. 시 전체를 눈을 감고 처음부터 외워보는데 이 이야기를 생각하며 외워보니 전과 달리 술술 외워진다. 외우기 어려운 것은 야하거나 자극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외우면 어렵지 않게 외울 수 있다! 필사적으로 한시를 외우려는 노력 중에 터득한 암기 노하우 중 하나이다.
7월 19일 자로 150수의 한시를 암기했는데, 가끔가다 외운 한시를 되뇌는 과정에서 시가 뒤섞이는 경우가 생긴다. 이익의 '야상수항성문적(夜上受降城聞笛)'을 외울 때 특히 그렇다.
回樂峯前沙似雪 회락봉전사사설 회락봉 앞에는 모래가 눈처럼 희고
受降城外月如霜 수항성외월여상 수항성 밖에는 달빛이 서릿발처럼 차갑다
不知何處吹蘆管 부지하처취노관 어디선가 갈대피리 소리 들려오는데
一夜征人盡望鄕 일야정인진망향 출정 군인들 모두가 밤새도록 고향을 바라본다
이 시에서 마지막 구절을 이상하게 항상 고적의 '새상문취적(塞上聞吹笛)'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 '풍취일야만관산(風吹一夜滿關山)'으로 읊게 된다. 하룻밤 사이 바람에 불려 관산[국경]에 가득 퍼졌네. 운만 틀릴 뿐 이 구절로 대체해도 시상에 큰 변화가 없고, 외려 이 구절이 더 시에 어울리는 것으로 암암리에 생각돼서 그런 것 아닌가 싶다. 고적의 원시는 이렇다.
雪淨胡天牧馬還 설정호천목마환 눈 개인 호지의 하늘에서 말 먹이고 돌아오니
月明羌笛戍樓間 월명강적수루간 달 밝은데 호적 소리 망루 사이에서 울리네
借問梅花何處落 차문매화하처락 묻노니, 매화꽃이 어디에 떨어졌기에
風吹一夜滿關山 풍취일야만관산 하룻밤 사이 바람에 불려 관산[국경]에 가득 퍼지나
*원시의 "관산[국경]에 가득 퍼지나"란 해석이 이익의 시에 옮겨져서는 "관산[국경]에 가득 퍼졌네"로 약간 바뀌었다. 문맥을 고려한 해석의 차이이다. 하지만 시를 암송할 때는 이런 미세한 해석의 차이가 별 의미 없다.
옛 분들이 한시를 능수능란하게 지은 건 나의 착각 경험과 비슷한 데서 연유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다수의 한시를 암송한 상태에서 자신이 마주한 경물을 그 다수의 한시에서 이런저런 대목을 취해와 적절히 짜 맞추었기에 손쉽게 시를 지은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연말이면 근 3백 여수의 시를 외울 것 같으니, 어쩌면 나도 연말에는 옛 분들과 같은 경지에 다다를지도 모를 일이다. 하하.
23번째 한시를 외우던 3월 3일 날 메모를 보니 이런 내용이 쓰여있다 "벌써 23수의 한시를 암송하게 되었다. 나날의 집적이란..." 스스로 대견스러웠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150수를 넘어서고 있으니, 대견스러움을 넘어 자랑스러움을 느껴야 하나? 하하.
그런데 150수의 한시가 온전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녀석들 틈만 나면 이리저리 도망하려 안달을 한다. 이 녀석들을 붙잡아 두는 방법은 반복 또 반복 밖에는 없다. 그러다 보니 시를 외우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 처음 외울 때는 10~20분 정도밖에 안 걸렸는데 지금은 2시간 넘게 걸린다. 초로의 늙은이에게는 만만치 않은 노동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렇게 만만치 않은 노동을 하고 나면 뿌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 맛이 없다면 진즉에 그만뒀을 것이다. 공자께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 하셨는데, 거짓말이 아님을 새삼 느낀다.
나이가 들수록 버릴 것 버리고 물 흐르듯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뭐라도 약간의 집적을 이루면서 살아야 삶에 대한 의욕과 재미를 느낄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왠지 지향없이 떠내려가는 배와 같아 삶이 공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돈과 재물의 집적도 좋지만 정신적 양식의 집적도 괜찮지 않을는지? 정신적 양식의 집적에 한시 암송도 한몫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