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全鰒)
"굴을 따랴 전복을 따랴 서산 갯마을/ 처녀들 부푼 가슴 꿈도 많은데/ 요놈의 풍랑은 왜 이다지 사나운고/ 사공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구나."
저녁에 아내가 전복죽을 끓였다. "웬 전복죽?" "요즘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흐흐흐~"
그런데 이런 표면적 호응(好應)과 달리 머릿속에는 조미미의 애절한 노래가 떠올랐다. 서산 갯마을(위 인용문). 뿐 만 아니라, 『춘향전』에 나오는 시도 떠올랐다.
金樽美酒千人血 금준미주천인혈 금술잔의 맛 좋은 술 만백성의 핏물이요
玉盤佳肴萬姓膏 옥반가효만성고 옥소반의 맛 좋은 안주 만백성의 기름이로다
燭淚落時民淚落 촉루낙시민루락 촛불의 촛농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 떨어지고
歌聲高處怨聲高 가성고처원성고 노랫소리 드높을 제 백성들의 원성 또한 높도다
맛있게 먹을 전복죽을 앞에 두고 이 무슨 궁상맞은 생각인가, 싶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건 우리 세대가 살아온 체험으로 얻은 어쩔 수 없는 생각 아닐까, 싶기도 했다. 우리 세대는 흔히 베이비 붐 세대로 불리는데, 좀 더 정확하게는 새마을 세대라고 불린다. 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것. 우리는 성장과정에서 '맛있는 것' 보다는 '배부른 것'을 우선시했다. 당연히 전복죽 같은 것은 먹어본 적도 없고, 먹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 것은 지위 높고 돈 많은 이들이나 먹는 것으로 치부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런 음식을 먹는 이들에 대해 부러움과 더불어 시샘도 갖게 됐다. 전복죽을 대하며 '서산 갯마을'이나 『춘향전』의 시를 떠올린 건 잠재돼있던 이 런 마음이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 세대는 일상에서 전복죽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게 됐다(먹겠다는 결심만 하면). 그러나 여전히 전복죽은 특별한 음식이다. 어렵지 않게 먹을 순 있지만 쉽게 먹진 못하는 것이다. 돈 문제도 약간 있지만, 그 보다는 마음의 문제가 더 크다. '맛있고 영양가 있는 것' 보다는 '양 많고 배부른 것'을 선호하는 의식이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 먹는 것에 사치 부리는 것을 터부시 하는 의식도 한몫한다. 이 역시 궁상맞은 의식일 것이다.
전복죽을 먹으며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더니, 아내가 한 마디 했다. "글쎄, 그게 꼭 궁상맞기만 한 것일까?" 그리고 한 마디 더 덧붙였어요. "배불리 맛있게 먹어~" “…”
사진은 아내가 산 전복 포장지에서 찍었다. '전복(全鰒)'이라고 읽는다.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全은 入(들 입)과 王(玉의 약자, 구슬 옥)의 합자이다. 옥을 깊숙이[入] 잘 보관한다, 란 의미이다. 온전할 전. 全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完全(완전), 全體(전체) 등을 들 수 있겠다.
鰒은 魚(물고기 어)와 复(復의 약자, 회복할 복)의 합자이다. 전복이란 의미이다. 어패류이기에 魚로 뜻을 삼았다. 复은 음을 담당한다. 전복 복. 鰒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鰒魚(복어, 全鰒과 같은 뜻) 정도를 들 수 있겠다.
여담. 전복은 포(鮑) 혹은 석결명(石決明) 또는 구공라(九孔螺)라고도 불린다. 포는 전복을 말려 먹는데서 비롯된 명칭이고, 석결명은 전복이 암초에 기생하는데서 비롯된 명칭이며, 구공라는 전복의 껍데기 표면 구멍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요즘은 대부분 양식을 하고 있는데, 1960년대 국립수산과학원 수산종묘배양장에서 종묘 생산을 시작했고 1974년부터 생산한 종묘를 양식어민에게 분양하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조미미의 '서산 갯마을'은 1972년에 발표됐다. 양식 전복이 나오기 전의 전복 채취 모습을 보여주는 노래이다. 그래서 이 노래가 더 애절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