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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재미

by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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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분이 운영하는 중국집에 가는 건 언제라도 즐겁다. 음식도 맛있지만 눈요기 거리가 있기 때문. 한시문 작품이 반드시 한두 점은 걸려 있어,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이것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랜만에 가족이 완전체가 되어 외식을 하게 됐다. 입 맛이 제각각이라 외식 장소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찾는 곳이 초밥집과 중국집이다. 다행스럽게도 다 좋아하는 곳이기 때문. 이번엔 모처럼만에 중국집을 찾았다. 아내가 민생 지원금으로 거하게 한 턱 쏘겠다고 했다. 덕분에 평소 같으면 엄두를 못 냈을 비용의 음식을 주문했다. 깐풍기에 유산슬 덮밥, 삼선 우동과 짬뽕밥까지.


중국 분이 운영하는 중국집을 찾았기에 예의 음식을 시키고 눈요기 거리를 찾는데 사진의 시가 눈에 들어왔다.


山中蘭葉徑 산중난엽경 산속 난초향 가득한 길

城外李桃園 성외도리원 성 밖 도리(桃李) 만발한 동산

豈知人事靜 기지인사정 사람 소리 없거니

不覺鳥聲喧 불각조성훤 번다한 새소리도


화사한 봄날 산 길엔 난초향 가득하고 성 밖엔 볼그레한 복숭아꽃과 새하얀 배 꽃이 활짝 피었다. 봄날의 경치에 자신도 모르게 이끌려 꽃구경 나온 이들이 내는 왁자함과 약동하는 봄 날을 만끽하는 새들의 지저귐이 한바탕 향연을 벌일법한 장면이다. 그런데 시인이 접한 장면은 그와 반대이다. 사람들의 왁자함은 물론 새들의 울음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절대 적막의 순간. 모든 것이 일순에 정지된 듯한 장면이다. 앞단락에 화사하고 약동하는 장면이 배치돼 이와 대비되는 뒷단락의 적막이 한층 더 무게 있게 와닿는다. 봄날의 화사함와 활발함에 동참할 수 없는 시인의 고적감을 그러한 언사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세련되게 드러냈다. 초당사걸(初唐四傑)의 한 사람인 왕발의 '춘장(春莊)'이란 시이다.


위 시는 산중 노스님이 머무는 산방이나 조용한 찻집에 걸릴법한 시이다. 번요한 음식집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 시가 대비(對比)를 통해 고적함을 드러냈듯, 번다한 곳에 걸려 있어 시가 갖는 고요함을 한결 더 깊게 느끼게 하는 면도 있다. 시를 음미하노라니 주변의 소음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인이 무슨 의도로 저 시를 걸어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동중정(動中靜)의 맛을 느끼라고 걸어놓았다면, 대단한 안목의 주인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시문의 내용을 설명해 줄까 하다 주변이 어수선하기도 하거니와 왠지 꼰대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음식이 나오기까지 혼자서만 음미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음식이 나오기까지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호, 그대 들이여! 내 내면에서 느끼는 이 고요함을 아느뇨 모르느뇨.


*사진의 한자는 간자체이다. 여기서는 번자체로 옮겼다. 사진의 큰 글씨는 '난(蘭)'인데 이건 이 시의 제목이 아니고 이 음식점의 홀 번호를 대신하는 이름이다. 매 · 란 · 국 · 죽실이 있는데 이 시는 난실에 걸려있던 시이다. 나중에 혹 이 음식점을 다시 찾게 되면 매 · 국 · 죽실에 걸려 있는 한시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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