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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같은 봄이 오기를

by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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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 호 땅엔 화초 없으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 자연의 대완 / 절로 허리띠 느슨해졌나니

非是爲腰身 비시위요신 / 어찌 잘록한 허리 때문이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인이 인용하는 바람에 유명해진 '춘래불사춘'의 출처시. 동방규의 '소군원(昭君怨, 왕소군의 원망)' 연작시 마지막 편이다. 왕소군의 일화는 널리 알려졌지만 혹 모를 이를 위해 잠깐 소개하자. 왕소군은 하늘을 날던 기러기가 그 미모에 취해 정신을 잃고 날갯짓을 멈추는 바람에 땅에 떨어지게 됐다는, 이른바 '낙안(落雁)'의 주인공이다. 새조차 홀릴 정도의 미모였으니 요즘 말로 절대미인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미색이 평시에는 알려지지 않고 감춰져 있었다는 점이다. 한나라 원제가 흉노와 평화조약을 맺으며 황실의 여인을 그곳에 시집보내게 됐는데, 화공(畵工)이 그려 바친 황실의 여인 중 가장 못난 여인을 골라 시집을 보내게 된다. 그 여인이 바로 왕소군이었다. 이런 어이없는 상황은 황실의 여인이 너무 많다 보니 황제의 취사선택을 돕기 위해 여인들의 초상을 그려 바치게 했는데 대부분의 여인들이 화공에게 뇌물을 주며 잘 그려주기를 요청한 반면 왕소군은 아무런 뇌물도 주지 않아 화공이 불쾌감을 느껴 반대로 그렸기에 생긴 것이었다. 시집보내는 당일 황제는 그림과 너무도 차이나는 천하일색의 왕소군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지만 국가 간의 약속이라 어길 수 없어 그대로 시집을 보낸 뒤, 화공을 처단했다고 전한다.


위 시는 시인이 왕소군의 심정을 대변하여 이역만리 불모의 타국에서 고국을 그리는 그녀의 애절한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며칠 전 시내 중앙통에 볼일이 있어 실로 오랜만에 중앙통을 걸었다. 중앙통을 걸어본 지는 적어도 10년 이상은 된 것 같다. 시 외곽에 새로운 번화가가 형성되면서 이곳 중앙통(흔히 원도심이라고 부른다)에 올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더라도 차를 타고 휙 지나갔을 뿐 걸은 적은 없었다. 아직도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려 그런지 얼마 걷지 않는데도 땀이 흘렀다. 중앙통에 전에는 다양한 상점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메이커 있는 옷가게들만 들어서 있고 중간중간 이 빠진 모습처럼 임대 딱지를 붙인 빈 가게들이 있었다. 상권이 죽었다는 말은 진작부터 듣고 있었지만 막상 그 실상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울적했다. 한 때는 서산의 명동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였던 곳인데…. 공실 건물들은 임차인을 구하지 못한 지 오래인 듯 관리가 안 되어 타일이 떨어져 나가고 쓰레기가 나뒹굴어 심란하기까지 했다.


위 시는 한 공실에 걸려 있던 액자(사진)에서 취한 것이다. 이 공실은 표구사였던 것 같았다. 사람의 발길이 줄어든 중앙통의 모습이나 손님이 오지 않아 문을 닫게 됐을 표구사의 정황이 이역만리에서 봄 같지 않은 봄을 맞이하는 왕소군의 처지와 묘한 일체감을 느끼게 했다. 향수에 시달려 날로 야위어가는 왕소군과 사람이 찾지 않아 점점 거리가 스산해지고 빈 가게가 늘어나는 중앙통의 모습이 비슷하지 않은가? 중앙통에 다시 옛날과 같이 사람들이 북적이는 때가 다시 올 수 있을까? 적어도 현재로서는 쉽지 않아 보였다.


왕소군의 시와 중앙통의 현 상황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요즘 호수공원에 지으려는 일명 초록광장이란 이름의 주차장 공사 문제가 떠올랐다. 호수공원은 서산의 신흥 상권이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다 보니 자연스레 주차 문제가 생겼다. 전임 시장 시절에 이 문제와 더불어 서산의 낙후된 도서관 시설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무료 지하 주차장이 포함된 복합 문화 공간 건립이 추진 돼 국비까지 확보됐었다.


그런데 신임 시장이 들어서면서 이 계획을 백지화하고 확보된 국비를 반납하고 주차장 설치를 강행하려 했다. 이 사업이 뜻있는 시민단체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자 시장은 주차장 위에 잔디 광장을 조성하겠다면서 주차장이란 명칭 대신 초록광장이란 이름으로 부르면서 자신이 추진하려는 일이 주차장 공사가 아니고 마치 녹지 공간을 확보하려는 사업인양 위장술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이 사업은 한 시민 단체에서 내건 현수막(사진)에 나온 것처럼 잔디 뚜껑을 덮은 주차장에 불과하다.


이 사업이 가장 황당한 건 기존의 복합 문화 공간이 들어섰으면 무료로 사용할 수 있을 주차장을 유료로 쓰게 됐다는 점이다. 사람이란 큰 것보다 작은 것에 민감한 법이라, 무료로 사용하던 주차장(현재 주차장을 지으려는 장소)을 유료로 사용하게 되면 손해 보는 느낌이 나 그곳에 주차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리되면 애초에 시장이 생각했던 주차난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하에 추진하려는 이 사업은 되레, 불법 주차가 늘어나, 주차 문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애써 확보한 국비를 반납하고 시민 세금을 쌩으로 써서 주차장을 만든 뒤 주차비를 받으려는 호수공원 주차장 공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사업이다. 전임 시장의 업적을 지우고 당장의 어수선해 보이는 주차 문제를 해결해 일시적인 산뜻한 모습으로 시민의 호감을 사 내년 지방 선거에서 표를 얻으려는 얕은 수작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신 상권 호수공원에 주차장을 설치하려는 현 시장이나 복합 문화 공간을 설치하려 했던 전임 시장이나 공통점은 '사람'에 있는 것 같다. 현임 시장은 당장에 사람들에게 산뜻함과 편의성을 제공하려는 것이고, 전임 시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람들이 이곳에 꾸준히 모일 수 있도록 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현재 호수공원 신 상권은 서산시의 외곽이 확대되면서 점차 그곳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것이 중론(衆論)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 사람들이 붐비는 호수공원도 원도심의 중앙통 모습과 같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때를 생각해 본다면 지금 지으려는 주차장 공사는 너무도 근시안적인 사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람들이 줄어드는데 산뜻하고 편리한 주차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조금만 앞을 내다본다면 상권이 옮겨가더라도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는 유인 방안이 필요한데, 이 유인 방안으로 도서관을 포함한 복합 문화 공간만 한 것이 어디 있겠나 싶다. 더구나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공간 지하에 현재 지으려는 주차장이 수용할 주차량을 거의 다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하니, 이 이상의 상책(上策)이 없다.


시민 단체는 현재 시를 상대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서명도 받고, 선전도 하고, 감사 청구도 하고, 주민 소송(현재 진행 중)도 벌이며, 근자에는 릴레이 단식까지 진행하고 있다. 한 때 똥방죽이라 불리며 온갖 오물이 모이던 이곳을 택지화 하려는 것을 막아내고 서산의 랜드마크 격인 호수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시민단체였다. 이 호수공원에 애정을 넘어 애착을 갖고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렇기에 호수공원을 좀 더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보인다. 시민 단체의 저항에 부딪혀 일시 공사가 지연됐지만 시 당국은 끝내 사업을 포기하지 않아 오는 22일에는 기공식을 연다고 한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공실의 액자에 담긴 시 한 편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삼천포로 빠진 느낌이다. 평소 주차장 공사 문제에 관심이 많다 보니 그리 된 것 같다(새가슴이라 활동은 미약하다).


만약 화공이 왕소군의 미모를 사실대로 그렸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아는 한 많은 여인의 이야기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터이고, 황제나 왕소군 모두 행복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화공도 행복했을지 모른다. 시장이 전임 시장의 업적을 지우려는 어깃장을 반성하고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대로 복합 문화 공간 사업을 다시 추진한다면 어떨까? 후일 혹여 상권이 이동했을 때도 사람들의 왕래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활기를 잃지 않아 원도심의 중앙통 같은 스산한 모습은 띄지 않을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좀 더 풍요로운 문화를 향유할 것은 불문가지일 터이고, 주차 문제 또한 고민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 보태어 시장의 용기 있는 반성과 결단을 많은 시민들이 오랫동안 훈훈한 미담으로 전하지 않을까 싶다.


부디 현 서산의 랜드마크 격인 호수공원에 왕소군 같은 비극이 아니 찾아오기를! 스산한 원도심의 모습은 하나로 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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