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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의 역리

by 찔레꽃
한 중국집에서 찍은 숟가락 집. 시의 의미가 깊다.



山僧貪月色 산승탐월색 산에 사는 스님 달빛이 탐나

幷汲一甁中 병급일병중 물 길으며 달빛도 함께 길었네

到寺方應覺 도사방응각 절 도착해사 깨달았네

甁傾月亦空 병경월역공 물 쏟자 달빛도 사라진단 걸


이규보의 '영병중월(詠甁中月, 병 속의 달을 읊다)'이란 시이다. 현상[달빛]과 본질[달]에 관한 깨달음을 절묘하게 읊은 시라고 알려져 있다. 무소유의 역리(逆理)를 그린 시로 볼 수도 있다. 달빛을 소유하는 순간 결과적으론 달빛을 잃게 되고, 달빛을 소유하지 않을 때 되려 달빛을 간직한다는 것이야 말로 무소유의 역리 아니겠는가.


철학자나 선승이 아닐지라도 무소유의 역리를 경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자녀 교육과 돈인 것 같다. 자녀를 잘 교육시키고 싶어 하는 것은 부모라면 누구나 갖는 바램이다. 그런데 자녀가 그런 부모의 바램대로 잘 되면 좋겠는데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이유가 뭘까? 소유의식 때문이다. 자녀를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자신의 바램대로 이끌려고 하기에 엇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뭘까? 자녀를 놓아주는 것이다. 소유의식을 버리는 것. 그러면 자신이 바라던 것을 얻게 된다. 무소유의 역리다.


돈도 마찬가지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은 것이 많은 이들의 마음이다. 그래서 돈을 모은다. 그런데 돈을 모으면 모을수록 행복과는 멀어진다. 이유가 뭘까? 돈은 만족을 모른다(정확하게는 돈은 가지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만족을 모르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어투를 그대로 사용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고 싶은 것이 돈이다. 이런 무한 불만족의 존재에 끄들리면 마음은 늘 궁핍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행복은 만족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돈을 모으면 모을수록 행복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해답은 뭘까? 돈을 놓아주는 것이다. 소유의식을 내려놓고 만족할 줄 아는 것. 그러면 자신이 원했던 행복을 얻게 된다. 무소유의 역리다.


사진은 한 중국 음식점에서 찍은 숟가락 봉투이다.


迷水月在 미수월재

弄花香滿衣 농화향만의 꽃을 희롱하니 향기가 옷에 가득


앞 구절은 해석이 안된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掬水月在水(국수월재수, 물을 뜨니 달이 손안에 있네)"로 나온다. 제작하시는 분이 잠시 졸았었나 보다.


손안에 있는 달을 가지려고 움켜쥐면 어떻게 될까? 꽃향기를 소유하려 꽃을 꺾으면 어떻게 될까? 달은 사라질 것이고, 향기 또한 얼마 못 갈 것이다. 가지려 하면 더 멀어진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시이다. 이규보의 시와 맥이 통한다.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掬은 扌(손 수)와 匊(움킬 국)의 합자이다. 손으로 움켜쥔다는 의미이다. 움퀼 국. 掬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掬飮(국음, 물을 떠 마심), 掬弄(국롱, 물을 두 손으로 떠서 장난함) 등을 들 수 있겠다.


弄은 王(옥의 변형, 구슬 옥)과 艹의 합자이다. 艹은 양 손을 그린 것이다. 두 손으로 구슬을 가지고 논다는 의미이다. 희롱할 롱. 弄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弄談(농담), 戱弄(희롱) 등을 들 수 있겠다.


코로나19로 각 나라마다 봉쇄령이 내려져 사람들의 왕래가 뜸해지자 지구환경이 눈에 띌 만큼 좋아졌다고 한다. 자취를 감췄던 야생동물이 나타나고 희뿌옇던 대기가 맑아지고 수질이 개선되고... 그렇게 오랫동안 걱정하던 지구 환경 문제가 단번에 손쉽게 해결된 것이다. 이 또한 또 다른 형태의 무소유의 역리가 아닌가 싶다. 무소유의 역리— 자본주의의 전지구화가 진행되는 이 시대에 되돌아봐야 할 가치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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