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끽미(喫味)

by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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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없어 못 먹겠구나!"


생전 어머니께서 위암 때문에 식이요법을 하실 때 하신 말씀이다. 저염식 혹은 무염식이다 보니 음식 드시기가 힘드셨던 것 같다. 얼굴을 찡그리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맛'없는 음식은 정말 먹기 힘들다. 설령 그것이 건강에 좋다고 해도. '맛'은 음식의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꼭 조미료나 좋은 재료가 요구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재료들을 어떻게 배합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어머니가 드시던 식이요법의 음식들은 그 맛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음식이었기에 드시기가 힘드셨던 것 아닌가 싶다. 단순히 저염식 무염식의 문제는 아니었지 않나 싶은 것.


재료의 배합에서 핵심은 과불급이 없는 '중용'일 것이다. 과해도 제대로 된 맛을 내기 어렵고, 불급해도 제 맛을 내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음식만 그런 것이 아니고 문화 전반에 해당된다고 본다. 일례로 정치문화에서 극우나 극좌를 혐오하는 것은 지나침 때문에 제대로 된 정치의 '맛'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맛'은 문화의 가치와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로도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어느 음식점의 창가에 붙은 광고 스티커를 찍은 것이다. '끽미(喫味)'라고 읽는다. '먹는 맛'이란 뜻이다. '맛'이란 말이 새삼스럽게 와 닿아 흰소리를 해봤다. 글씨 배경에 게장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게장 정식을 파는 집으로 보인다. 먹는 '맛'이 있다고 써 붙인걸 보니 중용의 미학을 잘 발휘한 '맛'있는 게장을 내놓는가 보다(게장을 먹을 줄 알면 한 번 평가를 해볼텐데, 아쉽게도 게장을 먹지 못한다).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喫은 口(입 구)와 契(맺을 계)의 합자이다. 깨물어 먹는다는 뜻이다. 口로 뜻을 표현했고, 契는 음(계→끽)을 담당하는데,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깨물어 먹을 적에는 위아래 이빨과 입술이 서로 맞붙게 된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먹을 끽. 喫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喫煙(끽연), 喫茶(끽다) 등을 들 수 있겠다.


味는 口(입 구)와 未(아닐 미)의 합자이다. 시고 짜고 맵고 달고 쓴 다섯 가지 맛이란 의미이다. 맛은 입으로 맛보기에 口로 뜻을 표현했다. 未는 음을 담당한다. 맛 미. 味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味覺(미각), 調味料(조미료) 등을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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