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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현판

by 찔레꽃



낙선재에 가보셨는지?


주인 잃은 궁을 돌아볼 때마다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지는데 낙선재에서는 그 슬픔이 더하다. 그리 멀지 않은 시기까지 박제된 역사의 인물이 아니라 동시대를 호흡했던 인물이 이곳에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방자 여사, 그녀는 1989년까지 이곳에 살았다. 일본명 마시모토 마사코인 여사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친왕 이은과 정략결혼을 했던 여인이다. 정략결혼이란 정치적 계산에 의해 맺어진 것이기에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그들의 운명은 흔들리게 된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이란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두 사람은 한 · 일 양국 어디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시련의 세월을 보낸다.


1963년 이방자 여사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다. 이승만 정권 시절 입국을 거부당했던 것과 달리 박정희 정권의 배려로 귀국하게 된 것. 그러나 이 배려라는 것도 다분히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전 이승만 정권은 혹여 모를 정치적 부담 때문에 이들의 입국을 거부했는데, 이 당시는 이미 이은 황태자가 병자의 신세였기에 정치적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귀국 이후 이방자 여사는 낙선재에 기거하며 시누이였던 덕혜옹주와 병자가 된 남편을 수발하며 지낸다. 이방자 여사는 돌아가기 전까지 자선사업에 전력을 기울였고 자신을 일본인 마시모토 마사코 보다는 조선의 황태자비 이방자로 인식하며 살았다. 그래서 그럴까? 한국인에게 그녀는 몇 안 되는 호감 가는 일본인으로 꼽힌다.


사진은 '낙선재' 현판이다. 좀 이상하다고 느낄 것 같다. 그렇다. 이 현판은 이방자 여사가 머물던 그 '낙선재' 현판이 아니다. 그 낙선재 현판은 이렇게 생겼다.





앞에 나온 '낙선재'는 이 '낙선재'와 동음이의(同音異義)어 현판이다. 일부러 동음이의를 취한 것인지, 아니면 모르고 한자를 다르게 쓴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사진은 아내가 한 찻집에 들렸다 찍어온 것이다.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洛은 氵(물 수)와 各(각각 각)의 합자이다. 감숙성 합수현 백어산에서 발원하여 황하로 유입되는 물을 가리킨다. 물 이름 락. 洛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洛陽(낙양), 洛書(낙서, 낙수의 거북 등에서 얻었다고 전해지는 주역과 관계있는 특별한 그림) 등을 들 수 있겠다.


善은 羊(양 양)과 言(말씀 언)의 합자이다. 양처럼 순하고 온화하게 말한다는 의미이다. 착할(좋을) 선. 善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善惡(선악), 善意(선의) 등을 들 수 있겠다.


財는 패(조개 패)와 才(재주 재)의 합자이다. 재물이란 의미이다. 조개는 고대에 화폐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貝로 의미를 표현했다. 才는 음을 담당한다. 재물 재. 財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財産(재산), 財力(재력) 등을 들 수 있겠다.


'洛善財(낙선재)'는 의미 풀이가 잘 되지 않지만, 굳이 풀이한다면, '낙양에서 생산되는 좋은 재화'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낙양'을 차를 생산하는 장소로, '차'를 투자 가치가 있는 재화의 의미로 보고 풀이한 것. 결국, 억지스럽지만, '좋은 차를 판매하는 곳'이란 의미가 될 수 있다. 이방자 여사가 살던 '樂善齋(낙선재)'의 의미는 '선한 일 하기를 즐거워하는 집'이란 의미이다. 쉬운 말로 바꾸면 '선행의 집'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이방자 여사는 한국에서의 생애를 봉사와 자선 사업에 바쳤는데 집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두 현판 모두 집주인에 걸맞은 현판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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