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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겅퀴 단상

by 찔레꽃
pimg_7232191431432005.jpg 엉겅퀴



그녀는 예뼜다? 아니, 그녀는 살벌했다!


신영복 선생의 책에서 한 창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창녀들은 대개 기둥서방을 갖고 있는데, 이 창녀는 기둥서방이 없었다. 기둥서방은 그네들을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그네들을 등쳐 먹고사는 이들. 기둥서방이 없다 보니 그네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내들이 나타났다. 그네는 그런 자들을 대할 때마다 서슬 퍼런 자해 행위로 그들을 물리쳤다. 선생은 이 이야기 말미에 이런 여인에게 요조숙녀의 덕목이 과연 적용될 수 있겠냐고 질문한다. 그러면서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지 않고 내뱉는 말이나 행동은 폭력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집 주변에 선생이 말한 그 여인과 비슷한 꽃이 있다. 과도할 정도의 자기 방어를 하는 날 선 꽃, 엉겅퀴이다. 짙은 보라색이라 호감을 주지만 만지려 하다간 낭패를 본다. 잎새와 줄기에 날 선 가시가 가득해 찔리기 십상이다. 엉겅퀴는 야생화지만 일반적인 야생화의 이미지― 애잔하고 아기자기한 ―와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엉겅퀴는 왜 이런 모양새를 취한 걸까? 혹, 저 창녀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런 모양새를 취하게 된 것은 아닐까? 만일 이것이 맞다면 엉겅퀴를 일반 야생화의 이미지에 견주어 보는 것은 엉겅퀴에 대한 폭력이라고 할 것이다.


작년까지도 엉겅퀴에 대한 폭력을 서슴지 않았다. 만지려다 손에 상처를 입어 욕을 한 것은 물론 홧김에 줄기를 잘라버렸던 것. 그런데 올해 그 자리에서 다시 꽃을 피웠다(야생화는 다년생 꽃이다. 뿌리를 다치지 않으면 다시 소생한다). 관점을 바꾸어 엉겅퀴를 보았다. 엉겅퀴의 입장에서 엉겅퀴를 본 것. 날 선 모습은 자기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일 거란 이해심으로 대하니, 왠지 속정 깊고 수줍은 꽃처럼 여겨졌다. 어쩌면 저 창녀도 속정 깊고 수줍은 여인은 아니었을지?


엉겅퀴는 한자로 대계(大薊), 산우방(山牛蒡), 야홍화(野紅花) 라고 한다. 계(薊)는 엉겅퀴라는 뜻이다. 계앞에 대(大)를 붙인 것은 엉겅퀴의 키가 크다는 의미로 붙인 것이다. 우방(牛蒡)은 우엉이란 뜻인데, 우방 앞에 산(山)을 붙인 것은 엉겅퀴의 뿌리가 우엉과 비슷하지만 본래의 우엉만 하지는 못하다는 의미로 붙인 것이다. 야홍화는 엉겅퀴가 피는 장소와 꽃 색깔의 특징을 표현한 이름이다.


薊, 한 자만 자세히 살펴보자. 薊는 艹(풀 초)와 魝(다듬을 결)의 합자로, 생선의 비늘을 다듬 듯 잎새와 줄기의 가시를 다듬어야 쓸모가 있는 풀이란 의미이다. 엉겅퀴 계. 薊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일상적인 예로는 들만한 게 없고 약초의 하나인 山薊(산계, 백출의 원 재료)와 방금 나온 大薊(대계) 정도를 들 수 있겠다.


엉겅퀴란 이름은 피를 엉겨 붙게 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다. 지혈제로 사용하는데서 나온 이름인 것. 엉겅퀴는 지혈제 이외에도 여러 가지 용도의 좋은 약재로 사용한다. 속정 깊고 수줍은 꽃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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