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하루는 육아가 더해지니 2배속으로 빠르게 흘러간다.
갑자기 돌프가 짜증이 나서 큰소리로 울면 32배속 정도로 더 빨라진다.
머리가 멍해지면서 회로가 멈춘다.
삐- 하는 기계음이 계속 들리면서 머리엔 전기모자를 쓴 듯한 착각이 들기도.
돌프가 낮잠을 잔다면 한숨 돌릴 수 있는데 이 힘으로 다시 오후를 보낸다.
밤잠을 자러 가면 비로소 평화가 찾아온다.
카레라로 촬영 중도 아니지만 룸톤(room tone)이 들린다.
숨을 골라본다.
그리고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면,
살랑이는 바람도, 흔들리는 나뭇잎도,
흘러가는 구름도, 뜨겁게 지는 해도 모두 느리게 움직이는 것만 같다.
돌프와 함께하는 온전한 하루는 행복한 순간들이 제법 많은데,
왜 내 하루의 끝은 이렇게 숨 가쁘고 힘만 드는지. 도통 모르겠다.
체력이 부족해서일까 운동도 해보고
기분을 올려보려 달콤한 과자를 먹어봐도. 늘 나의 배터리는 빨간색이다.
출근이 하고 싶어 지다가도
돌프와 하는 이 순간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매일 '나는 언제 출근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나는 출근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
'그럼 돌프는 누가 돌보지?'
'엄마 손이 덜 가는 나이는 초등학교 3학년쯤 된다는데,
돌프는 아직 생일 한 번 지났네...'
사실 의사나 변호사처럼 전문직이 아니라면,
경력단절을 걱정하는 건 우습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누구나 내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그런 일자리라면
부부 중 한 명은 포기하고 아이를 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왜 경력 단절에 목을 매는지 내심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의사나 변호사인 것도 아닌데. (우스운 일이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오히려 이해가 되더라.
의사나 변호사처럼 전문직이라면, 쌈박하게 애 키우고도 돌아갈 곳이 있다.
그리고 나의 결단은 주변인들로 하여금 찬양(?)을 받을 것이고
아이에게도 당당하고 스스로에게도 당당하겠지?
하지만 보통의 우리는 지금 있는 이곳이 아니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가서 예전과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 내 자리를 잡고 있어야만 하기에 경력단절이 무서운 게 아닐까.
이대로 끊어진다면 다시 나는 어디로 가서 시작을 해야 하며,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으니까.
직장이라도 있었으면... 여기까지만 막연할까?
자영업을 하다가 폐업한 나는..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할까.
폐업하는 자영업자의 수가 역대 최고라는데.
개업하는 '나'라니. 코웃음이 절로 나온다.
"크림아, 그냥 신랑이 벌어주는 돈으로 알뜰살뜰 살림하면서,
애 키우고 살림하고 살아. 여자는 그게 남는 거야, 그게 제일 큰 거야."
친정엄마가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엄마가 생각난다.
싱크대 앞에 서있던 엄마의 공허한 표정이 생각난다.
그 작고 길던 한숨소리도에 맞춰진 너무나 규칙적이던 칼질 소리까지도.
#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