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니 알게 된 점이 있다.
거창하거나 그러진 않고 주로 나 자신의 고유성질(?)에 관한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내 맘에 드는 점도 있고 흐린 눈으로 모르는 척하고 싶은 점들로 나뉜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나는 늘 만족을 주는 사람이라는 거다. 아이에게 한정되지만.
아이의 요구를 들어줄 때마다 아이가 느끼는 만족감은 100프로다.
'엄마'하고 부를 때 대답만 해도 더 큰 함박웃음이 돌아온다.
부름에 대답한 것이 다인데. 아이는 내 미소와 목소리만으로 만족한다.
이 외에도 기저귀를 갈거나, 배가 고플 때 맛있는 밥을 차리거나, 밖으로 나가서 놀거나, 책을 읽거나 등등
내가 아이에게 만족을 주는 순간들은 제법 많다.
문제는 이 순간들이 계속 반복이 되다 보면 괜히 이유 없이 내가 삐뚤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아마 만족을 주기 위해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 중에서 우선순위가 달랐던 거겠지.
이를테면, 기저귀를 새로 입혀야 하는데 아이는 옆에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고 나는 빨리 기저귀를 입히고 싶다. 앉으면 기저귀를 입을 수 없는데 아이는 앉아서 놀고 싶고 나는 아이를 세우고 싶은 뭐 그런 상황?
이 외에도 이런 종류의 단순하고 지겨운 일들이 되게 많다.
잘 걸어가다가 안아달라는 아이에게 몇 번 안고 내리길 반복하다 보면 '걸어가자, 엄마 팔 아파.' 라던지, '안 걷고 안길 거면 다시 집으로 가자!'라는 협박도 가끔 한다. 내뱉는 순간 안다. 내가 무려 나이가 몇 살이나 많은데. 치사하다. 심지어 엄마면서. 자괴감 지수 쭉쭉 오른다.
'엄마도 사람인데'라는 이유로. 그 이유를 방패 삼아 속에 있는 불평불만을 아이에게 내비친 것이다.
모든 일들이 그렇겠지만
육아는 특히 내가 반복된 일상을 잘 다뤄야 힘들지 않고 즐거울 거 같은데 나는 못 다루는 사람인 것이다.
오은영 박사의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데, 이런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내가 어떻게 해도 결국 아이는 나를 받아줄 것이란 걸 알기 때문에 쉽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것이라고.
정확한 단어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런 내용이었는데, 나는 이 마을 듣고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지금 이 아이가 어려운 사람이었다면, 내가 그랬을까? 한번 더 참지 않았을까? 하는 거다.
이 말을 자주 되새겨보지만 그래도 가끔 심술부리는 나는.. 참 못났다.
20대와 30대를 지나오면서 나 스스로 인간성이 많이 다듬어졌다고 뿌듯해했던 순간들이 많은데.
육아를 하다 보니 난 아직 멀었다. 인간갱생이 어디 쉬운 줄 알았던 과거의 나, 반성해라 반성해.
#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