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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서 Jun 02. 2023

이 책이 SF로 분류되는 이유를 기술하시오.

소 읽고 뇌 약간 고치기

20230415.


비명을 찾아서: 경성 쇼우와 62년(1987. 복거일)


https://brunch.co.kr/@seoseo/240


결론을 내렸다. 약간 후련한데?

그 선생님은 다 읽지도 않은 책을 가지고 학생들 앞에서 입만 털어댄 것으로.

선생님이 말한 비석의 글자를 보고 언문을 찾아간다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제목의 비명(碑銘)은 지나간 세월과 사상, 지식의 헛됨을 후회하는 장치로서 한번 언급될 뿐 전혀 나오지 않는다.  






줄거리.


*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 실패로 끝나고 대한민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계속 남아있다는 설정의 대체역사소설입니다. 조선의 역사와 언어는 모두 말살되어있는 상황입니다. 필립.K.딕의 높은 성의 사내 파쿠리라고 해도 할 말은 없을 것입니다.

 


쇼와 62년.

경성의 한 아파트에 사는 주인공 기노시타 히데요는 나름 건실한 중견회사의 과장으로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서둘러 선보고 결혼한 부인과 그 사이 중학생 외동딸을 두고 있는 40세 가장이다. 여러 모로 정력적이고 영어도 잘하며 자기 관리 뛰어난 40세로 묘사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주인공은 시 쓰는 중년 오타쿠라는 사실로 그는 막 두 번째 시집을 출간한 상태다.

정말 좋지 않다. 시 쓰는 중년남자

불안하다.


새해 첫 날 일찍 일어나 모닝 루틴을 하며 부하직원 도끼에랑 올해는 진전이 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아니 내가 무슨. 험험. 그치만 내가 그녀에게 품고 있는 애정은 마흔이 된 나이에도 애틋한 사랑을 노래하는 서정시를 쓸 수 있는 원동력이라구! 라며 자신의 애정은 다르다며 합리화를 한다.


일본 본토에 사는 내지인(=순수 일본인?)과 달리 한반도에 사는 반도인(=조선인)인 자신으로서는 원하는 만큼의 시인으로 명성을 떨칠 수 없을 것 같은 패배주의를 품고 있다. 순수하게 본인의 시 세계를 넓혀 조선인으로 막혀 있는 유명세를 떨쳐볼 수 있는 탈출구가 될 것만 같아 사라진 조선 한시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헌책방에서 조선 고시가전을 발견한다. 그 책을 사서 나오며 남의눈을 피해 유곽을 찾았을 때의 흥분을 느낀다. 그리고 조선의 한시. 고시가전에 대한 조사를 지속한다.


장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신다. 장례를 위해 찾아간 절에서 노승에게 혹시 조선어를 기억하시느냐고 묻는다. 그 노승은 내가 이런 것을 가지고 있다네.. 라고 하며 만해 한용운의 책보따리를 전해준다. 드디어 조선의 한시가 아닌 훈민정음으로 된 시를 읽는다. 님의 침묵을 읽으며 조선어를 계속 연구하고자 마음먹는다.


일본인으로 태어나 일본어와 일본역사를 배우며 일본인으로 자라난 그는 만주국과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있는 한, 일본에 진정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그것이 일본이 받는 천벌이다-라며 일본인으로서의 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본인이 가진 사회적인 불평등의 계층에서의 억울함을 토로할 때만 조선인으로 정체화하는 매우 이중적인 인물이다. 왜곡된 사회의 진실을 알게 될수록 그는 고양감에 떤다. 이 조선반도에서 나만 이 사실을 알고 있어.. 그러나 이 진실을 알고 있을 집단을 찾아 나서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 그는 부하직원 도끼에를 연모하고 있다. 일본 내지의 높은 집안 출신의 도끼에는 예쁘고 똑똑하고 일도 잘한다. 센스도 만점이다. 도끼에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조선어의 뿌리를 찾아나가는 여정만큼이나 크고 주요한 내용으로 진행된다.


기노시타는 회사의 사활을 건 계약을 진행한다. 상대는 미국인 앤더슨으로 이 때 노련한 협상가로서의 능력이 잘 드러난다. 사내 정치를 꿰뚫어보는 눈도 뛰어나지만 드러내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그는 시인이기 때문에 고고한 자신을 유지하는 것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군부 정치를 표방하는 일본, 그리고 식민지와 다름없는 조선에서 외국계 기업을 상대로 진행하는 큰 계약 건을 기노시타는 뛰어난 센스와 언어실력으로 해쳐나간다. 종이 서류로 진행되는 한 회사 내부 묘사는 꽤 재미있다.


그러나 그의 속은 조선어와 자신의 패배주의, 열등감의 근원인 본인의 신분(성분?)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와중에 도끼에는 미국인 앤더슨과 가까워지고 결혼하게 된다. 기노시타는 실연 당한다. 뭔지 알죠? 자기 마음을 고백한 적도 없는 여성에게서 자기 혼자 실연당하는 남자들의 그 감수성. 이 감수성이 생각보다 유구했네요.


조선과 조선어에 대한 조사를 위해 모교를 찾는다. 캠퍼스 교정에 누워 사랑해 마지않는 도끼에를 떠올린다. 그녀가 앤더슨과 섹스하는 상상을 하며 발기한다. 그리고 여학생들 허벅지 볼 거 다 쳐다보며 '싱싱하다' 품평할거 다 하며 발기한 채.. 시를 쓴다.

그 시는 도끼에의 흰 두 다리 사이 습한 길을 통해 태어나는 생명에 대한 묘사로 끝을 맺는다.

이 책을 여기까지 읽어오며 주인공 자작시를 모두 읽어야 했던 독자라면.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가 도끼에와 결혼할 엔더슨과의 아이를 말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 만일 맺어졌더라는 가정 하에 자신과의 사이에서 있었을 아이도 아닌 바로 기노시타 자신을 의미함을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결코 섹스하지 못할 그녀의 성기에서 자신이 다시 태어나는 시를 쓰고 있다. 발기한 채.

돌겠네 이게 뭐야 진짜. 저 자작시와 벌거벗은 여인의 형상을 나무판에 손수 조각하여 도끼에의 결혼 선물로 준다. 물론 그녀는 감격의 눈물을 쏟으며 받는다. 그리고 그녀는 실은 과장님을 연모했어요 라고 지나간 고백을 하고는 미국인 앤더슨과 결혼한다. 이 고백을 받은 기노시타는 그녀가 자신을 성애적으로 사랑했음을 의심하지 않지만 엘리트 규수 도끼에는 회사 내 정직한 활약과 시인으로의 워라밸을 병행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를 연모했을 것이다.


일본에 일이 터진다.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다 되어가던 계약이 위태로워진다. 기노시타가 회사를 대표해서 내지(=일본 본토)로 출장을 간다. 출장 간 김에 내지의 도서관에서 조선에 대한 자료를 찾을 생각에 들뜬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노련한 협상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다가도 스트레스 받는 차에. 길 가 사창가에 앉은 몸파는 여자가 치마를 걷어 올리면 불가항력으로 들어가서 오입질을 한다. 사춘기 소년에 비견할 수 없다. 이건 뭐 숫제 짐승


계약 진행을 위해 몇번인가 높은 군부 실세들을 찾아가게 된다. 사무실 비서가 웃으며 커피 한잔 내준다. 저 비서가 분명 자신에게 섹스를 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저 비서와 섹스할 생각을 하며 두근거린다. 출장이 끝나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올 때 그 비서가 자기와 섹스를 강하게 원했는데 하지 못해서 매우 아쉬워한다.


도서관에서 드디어 조선에 대한 단서를 많이 찾는다. 역시 조선의 역사는 실제했어. 그런데 왜 지금은 이렇게 된 것일까?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항 세관에서 가방에 넣어둔 책이 걸린다. 바보인가.

사상범이 된다.

감옥에서 사상 교화를 받는다.

부인 세쯔코가 열심히 옥바라지를 한다. 재주 좋게 커피도 넣어준다. 이게 그냥 될 리가 없다는 것 모두 알죠. 그러나 주인공만 모른다. 나 말고 이 조선반도에서 옥살이 카페를 즐긴 자 누구 있으랴~ 하며 흥취에 겨워한다. 옥중에서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며 신나한다. 내 작품에 깊이를 더 해줄 경험이 될거라며 좋아한다.


주인공과 같은 길을 먼저 걸었다 이제는 사상범 교화에 힘쓰고 있는 하꾸야마라는 인물이 나온다.

이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발언들은 순도 100%의 친일 논리로 가장 소름이 돋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지금 2023년에도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얼핏 논리 정연하나 저 논리를 파훼할 방법이 주인공에게도 마땅찮다. 주인공 기노시타의 속마음도 이렇다 ' 조선 사람들이 손해를 좀 보더라도 그냥 참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일본이 없어지면 도도한 서양 세력으로부터 동양을 지킬 나라가 어디 있는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냥 내가 내 나라를 사랑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이것 하나만 가지고 가자.'며 소극적이고 안주하려는 모습을 내내 보인다.


두 달 만에 빵에서 나와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다방 레지의 가슴 명찰을 보며, 아니 벗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옷 안에 있을 가슴 모양만 보고도 다리 사이가 뻐근해진다고 한다.

짐승도 아니다. 7년 동안 번데기 상태로 땅 속 나무뿌리 즙 빨아먹다 어찌어찌 탈피하여 한 달 남짓 성충 시기동안 미친 듯이 교미를 외쳐대는 수컷매미 같다. 이런 주인공이 1980년대에는 정력적인 남자주인공으로 여겨졌을까?

가까이 있는 40대 초반 특이 질병 없는 유자녀 기혼 남성에게 만약 당신이 두어 달 빵에서 사상교화받다 나와서 옷 안에 가슴이 있는 카페 알바를 보면 발기가 돼서 마주 앉은 사람이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기 어려울 것 같으냐는 질문을 했다가 어디서 또 뭘 보고 그런 소리를 하냐는 말만 들었다.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이제 와서 옥바라지하던 와이프가 아오키 소좌라는 군인에게 몸로비 해온 것을 자기 집에서 제 눈으로 보고서야 알게 되고 그 잡것이 딸까지 건드린 보고서야 폭발한다. 자기 집에서 자신의 잠옷을 입은 아오키 소좌를 본 순간에는 아무 말도 못하고 꾹 참는다. 와이프 까지는 참는 것이 참 하이퍼리얼리즘이다. 더 소름 끼치는 것은 남자의 자존심으로 이 와중에 형님처럼 구려고 본인이 자처하여 아오키 소좌를 다시 집에 초대한다는 것이다. 나는 네가 내 마누라를 건드린 것을 알고 있지만 짜식아 마. 형님처럼 내가 넘어가준다. 이런 포지션을 취하고 싶어 굳이 굳이 그런 술자리를 본인이 자신의 집에 만든다. 탐탁잖아하는 와이프를 설득까지 해서 구겨진 자존심을 세울 속셈으로 아오키 소좌 옆에 붙여줄 싱글 여성 한 명을 불러 2대 2 술자리를 본인 집에 준비한다. 미치겠다 진짜. 그런데 와이프의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대박이 남았어요.


남자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한 2:2 회심의 술자리에서 싱글 여성이 먼저 집에 가버린다. 아 이게 아닌데. 다시 아오키 소좌는 와이프에게 집적거리고 화장실에서 딸까지 추행한다. 이제서야 폭발한다. 아오키 소좌를 목졸라 죽여버린다. 살인을 하며 이것은 지금까지 핍박받고 괄시받은 조선인의 한이라며 합리화한다.

그리고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후 별자리를 따라 제 길을 가겠다며 처자식 버리고 상하이로 도망길에 오른다.


이 긴 책의 마지막 수 페이지는 정말 기괴하고 괴이하여 흥미진진하다.

깊은 밤. 이 집 거실에는 아오키 소좌의 시체가 신문에 덮여 있다. 아오키 소좌의 추행에 충격받은 딸은 일찌감치 제 방에서 자고 있다. 와이프도 자고 있다. 이 둘은 집안에서 살인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있다.


새벽 두 시에 일어나서 냉장고를 탈탈 뒤진다. 요리만화처럼 냉장고 안 재료를 하나하나 읊어가며 얼어있는 소고기를 녹이고 양념에 잰다. 아 고기가 덜 녹아 양념이 충분히 베지 않는다. 이런 소리를 하면서. 불고기를 만들고 김밥을 만다. 이 책에서 주인공이 요리하는 거 처음이다. 보리차 한잔도 와이프가 떠다 주어야 마시는데 살인을 모르는 처와 딸 몰래 도망가는 길에 먹을 제 도시락을 정성들여 싸는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야생인이 되어 있을 본인의 로드라이프를 그리며 굉장히 신나고 들떠있다. 해결 못할 사고를 치고는 완전 정신을 놓은 사람 같다. 강에서 낚시로 고기 낚고 풀 뿌리 나무 열매 먹고 바위 아래 웅크리고 자면서 걸음을 옮기는 자신을 그리며 주먹을 불끈 쥔다.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한다.


눈을 뜬 와이프와 딸이 집안에 덜렁 놓인 시체를-그것도 일본인 소좌의- 발견하고 그녀들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관심이 없고 이제 도망자가 될 자신의 상황에 마구 들떠서 가방을 싸고 최애 시집을 챙기고 돈을 챙긴다. 커피는 포기 못하지~ 하며 커피를 챙겼다가 응? 너무 무겁네 하며 빼고는 잠자는 딸의 방에 들어가서 딸의 망원경과 라디오, 나침반을 쌔비고는 아오키 소좌의 시체를 뒤져 꺼낸 돈을 딸 책상에 대신 올려둔다.  


남 쳐다보듯 딸과 아내를 쳐다보다가 생각한다. 쯧쯧 이 모녀의 앞으로 인생보다 더 걱정되는 인물들을 떠올린다. 사상범이 되었음에도 자신의 직급을 지켜준 회사 상사들에게 가족보다 더 미안하다며 죄스러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심려되는 사람은 자신을 변호해 준 하세가와 감사와 도끼에를 사랑하느라(..) 신경써 주지 못했던 여직원 하나꼬라고 한다. 그 둘이 가장 마음에 크게 걸린다고 한다. 아니 왜 이러는 거예요.

동이 트는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에 고인 슬픔을 밀어넣으며 '길이 보이는 한, 나는 비참한 도망자가 아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땅을 찾아 가는 망명객이다' 이러면서 도망간다. 소설이 끝이 난다.


발정난 짐승같은 모습과 자신 안의 열등감과 패배감에에 수치를 느끼며 시인으로 한발 더 나아가고자 발버둥치는 내면의 모습과 회사에서 노련하게 협상하는 과장으로서의 모습과 가족 앞에 사이코패스같은 저 모습이 모두 동일인물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 설정의 투머치





 

199n년 동래여중 문학 담당 선생님. 이름은 기억 안 나고 별명만 떠오르네요. 왜 수업시간에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책을 그렇게 썰을 풀어대서 제가 이 나이 먹고 이 책을 읽게 만드셨습니까. 정말 원망스럽네요.


매우 고루하고 서정적인 표현들이 마치 어릴적 아버지가 목에 감으시던 넓은 넥타이처럼 정겹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고 영등포, 김포, 부산 등등 익숙한 지명이 일본어 표기로 뒤덮인 이 세계관도 흥미로웠던 것이 사실이에요.

혼자만의 애환과 비탄에 젖은 이 중년 주인공의 인격이 대체 몇 개인지 헷갈리고.. 아무리 1987에 나온 소설이라고 해도 심각한 남성적 도취에 빠진 주인공을 따라가다 너갱이가 나갈 것 같은 기분도 어디까지나 재미로 느낄 수 있어요. 실로 수십 년 전 책의 즐거움을 두루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이 소설이 한국 SF 소설의 시초라고 과학관에 전시까지나 되어 있는 것은 창피합니다. 아니 창피가 아니라 쪽팔린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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