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무기력입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내 마음방의 문 두드렸다.
똑똑 - 정중한듯하지만 어딘가 힘이 없는 소리에 별다른 위화감 없이 문 열어줬다. 마침 엊그제 '벅차오름'이라는 손님이 다녀갔었고, 연이어 '불안감'이라는 손님이 찾아와 두 손 마주 잡고 골머리 썼던 참이었다. 한마당 처사를 치우고 무기력이라는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저는 무기력이라고 해요. 어딜 가나 절 반가워하는 이는 통 없더군요. 잠시 머물 곳이 필요해요. 저와 시간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열린 문틈 사이로 우리는 별말 없이 옅은 웃음 주고받았고, 손님은 꽤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더 웃어 보이기보다 따듯한 바닥에 앉아 멍 때리는 것을 선택했다. 둘이 보내는 적막한 시간이 왜인지 나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났을까, 나보다 먼저 손님이 입을 열었다. 다소 두서가 없는 말이었다. 그런 손님에게 머리로는 '아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푹 쉬다 가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을 얹는 게 괜히 번잡하게 느껴졌다.
어딘지모를 어두운 인상의 낯선 손님들을 맞을 만큼 내 품이 크지 못하다는 것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벅차오름 손님을 맞을 때 마음 가누지 못하고 집안의 온갖 맛있는 것들 내어놓고, 내 지난 일들과 앞으로의 일들을 떠벌리기에 바빴다. 그때 조금만 힘 남겨두었다면 지금 손님을 더 정성껏 맞을 수 있지 않았을까.
자책하는 내 마음이 얼굴에 드러난 걸까. 손님은 내가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을 내게 건넸다.
"폐를 끼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저 잠시 쉬어가고 싶었어요. 돌아보니 참 열심을 내었더군요. 몰입하느라 몸과 마음 고되다는 것도 몰랐어요. 열심만 낼 수는 없더군요. 멈추는 것이 그만두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잠시 쉬다 보면 다시 걸어갈 힘 나지 않을까요?"
힘들었을 텐데 애써 웃어 보이려는 손님이 꼭 나 같았다. 그때 깨달았다. 마주 앉은 손님과 내가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사이에 연결감 느낄 수 있었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나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조용히 손님의 눈 바라봤다. 손님은 무언가 결심한 듯했다.
"사실 어딜 가던 길이었어요. 가야 하는 길 떠올리며 어려운 마음만 들었었는데, 지금은 조금 기대가 돼요. 다시 가야 할 때가 온 거겠지요. 푹 쉰 덕분이에요. 고맙습니다."
손님은 처음 들어올 때와 전혀 다른 기운 풍기며 문 나섰다. 손님을 떠나보내고 내게 알 수 없는 감정 느껴졌다. 엊그제 만난 벅차오름과는 달랐다. 조금 더 깊었고, 조금 더 느렸다. 그래서 그런지 두근거림이 더 강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우리가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만난다면, 그땐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다.
오랜만에 창문 열고 환기를 했다. 서늘한 바람이 마음방 구석구석을 씻어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