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는 찬란한 파도와 같은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른다 싶다가도 고작 이만큼이라 여겨지는 걸 보면 하루하루 알차게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아쉬운 게 있다지만 정말 그럴까 싶다. 어쩌면 난 지금 그냥 있는 그대로 만족하고 있을지도.
폭이 좁고 높은 공책과 손목에 걸리는 책상 모서리도, 다 식어버린 커피도, 자리를 잡지 못하는 앞머리와 서른한 살의 여름도. 전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어딘가 어정쩡하게 걸쳐있는 것 같은데. 어설픈 것들을 줄 세워 놓고 본다면 나름대로의 삶을 살고 있다.
실감이 나지 않는 여름 방학을 맞이했고, 책상 위엔 흥미로운 몇 권의 책들이 있고, 준비해야 무언가들이 적당한 무게로 다가와 있다. 그리고 내 가슴 안엔 푸르른 학생들의 웃음과 장난, 익어가는 풋풋한 사랑이 담겨 반짝이고 있다. 보이지 않는 바로 옆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살아가는 벗들의 삶이 있다. 막막한 일 앞에서 떠올릴 든든한 이가 있고, 외로울 때 살며시 찾아갈 정다운 공간이 있다.
삶은 여전히 무수한 모순으로 가득하고 무엇하나 똑같은 내 것은 없지만, 그 모순이 결국 커다란 하나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겠어서 일까. 삶이 가지고 태어난 생명력대로 어떻게든 흘러갈 것이 조금은 믿어지기 때문일까. 나에게 주어진 희미하고 위태로운 이 삶 안에서 재미가 고개를 내밀고 있진 않은지 두리번거린다.
높이 솟아올라 한 순간에, 그러나 때마다 그 높이와 모양을 달리하며 찬란하게 부서지는 파도 같다. 힘을 다해 부서지는 파도가 시원하고 힘차다. 어쩌면 푸르른 하늘을 닮아 그 깊이와 넓이를 아는 파도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감히 거침없는 파도를 노니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