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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Nov 14. 2016

사랑니

첫사랑처럼 아프다니요 

*

하루 종일 이따금씩 이가 욱신거렸다. 충치가 생긴 것 같아 거울로 이를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아래 어금니 위쪽에 하얀 이가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옆에 있던 은주에게 “나 이가 새로 자라고 있어.”라고 말했더니, “그거 사랑니야.”라는 말과 함께 걱정스러운 표정이 돌아왔다. 


사랑니라니. 낯선 단어였다. 말하자면 존재하지만 내겐 속하지 않는, 드래건 후르츠(선인장의 열매)와 같은 것이었다. 스물네 살에, 이가 새로 자라나다니. 충격이었다. 발바닥에 생긴 티눈이나, 손가락에 생긴 사마귀처럼. 어릴 때 처음 이마에 생긴 여드름을 본 것처럼. 내 몸에 작은 뭔가가 생길 때마다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는 했다. 평생 없이 살았는데, 어느 날 내 몸에 툭 생긴 뭔가가 반갑지는 않았다. 한동안은, 계속해서 신경이 쓰이니까. 없애려고 노력을 해도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덧나기만 했다.


내게도 사랑니가 생겼구나, 하고 넘어가려는데 은주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사랑니가 멈추지 않고 잘못된 방향으로 자라면 통증이 심해서 이를 뽑아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 말에 거울 속 사랑니를 자세히 보니 조금 삐뚤게 자란 것 같다.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한다. 여기는 우리나라가 아닌데, 정말 많이 아파지면 어떡하지. 내가 가입한 보험으로는 치과 보험은 안 될 것 같은데. 두려운 마음에 인터넷에 사랑니를 검색하고, 지인에게 물어보니 더 자라나지 않으면 괜찮다는 말들이 온다. 일단 경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사진 출처 : 이은주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어금니가 날 때, 마치 첫사랑을 앓듯이 아프다고 하여 ‘사랑니’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는 시기에 나온다고 하여 지치(至治), wisdom tooth라고 한다고 한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사랑니의 어원이 재미있다. 첫사랑을 앓듯이 아프다니. 도대체 얼마나 아프면 이런 표현이 붙었을까. 아무리 그래도 첫사랑을 앓는 것보다 더 아플까 싶기도 하다. 가슴 아픈 첫사랑을 지나고 나면, 우리는 누구나 조금 더 성숙해진다. 내 사랑이 얼마나 서툴렀는지 알게 되고, 사랑 하나만으로 사랑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을 사랑하면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여러 가지 감정들도 겪기도 한다. 이런 첫사랑의 시간들을 지나고 나면 조금은 성숙해진다는 뜻에서 wisdom tooth라는 단어가 붙지 않았을까. 하지만 마냥 지혜로워진다는 것에는 동의를 못하겠다. 우리는 언제나 사랑 앞에서는 바보가 되어버리니까. 또 다른 사랑 앞에서도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 서투른 사랑을 반복하게 될 테니까.


사진출처 : 이은주


내 사랑니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조금 더 자라게 될까. 예쁘게 자라서 뽑지 않고, 같이 오래 함께할 수 있을까. 아니면 못나게 나서 날 괴롭힐까. 고통에 못 이겨 결국엔 뽑아야만 할까. 아니면 아예 더 자라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사랑 또한 어떻게 될까. 지나간 사랑은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앞으로 새로운 사랑을 과연 할 수 있게 될까.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될 땐,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 날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사랑니도, 사랑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사랑니를 없애려고, 혹은 지나간 사랑을 잊으려고 발버둥을 쳐도 덧나기만 할 뿐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보는 것. 그렇게 기다리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이 보이는 순간이 오겠지. 다행히도 사랑니는 발견한 그 날 이후에 아프지가 않다. 이제는 지나간 사랑에 아파서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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