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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Nov 26. 2016

나와 너, 그리고 삶

나와 너는 분명 다른 존재이지만, 너와 완전히 다른 존재는 아니었다.

Cafe Scarecrow, Auckland, 출처: 이은주

살면서 나와 너, 그리고 삶의 대한 숱한 질문들을 하게 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질문엔 질문으로 답했고, 그 뒤엔 또 다른 질문이 따라왔다. 답을 얻고 싶어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떠나도 그때마다 느끼는 바는 있었지만, 그것이 답이 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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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때에도, 지금도 내 머릿속을 가장 헤집고 다니는 물음표들은 나와 너, 그리고 삶에 관한 것이었다.


이를 테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무엇을 가장 좋아할까? 나는 어떤 것을 할 때 가장 행복할까? 내 코는 왜 이렇게 낮은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이기적인 존재일까? 너는 왜 나를 사랑할까? 너는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너는 왜 이리도 아픈 말을 잘도 할까?

사람은 왜 태어났으며, 왜 죽어야 하는 걸까? 삶에선 성공과 행복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맞는 걸까? 왜 삶은 힘든 고비를 넘기면 왜 더 힘든 고비가 있는 걸까? 어떻게 그것들을 잘 넘기며 살 수 있을까? 과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꼬박 밤을 새도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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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저 위의 많은 질문들 중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들이 대다수이지만, 나와 너, 그리고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흐릿한 정의가 내려졌다. 나의 상처를 보다가, 너의 상처를 헤아리다가 알게 되었다.


누구나 저마다 상처가 있다는 사실은, 꽤 이른 시기에 알았던 것 같다. 같은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버려졌거나, 부모와 떨어져 지내거나, 부모에게 학대받았던 아이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불행한 줄 알았었다. 그런데 학교를 가고, 친구들의 비밀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부모님이 매일 싸우고, 이혼한 가정이 있고, 재혼한 가정도 있고, 학대와 폭언을 받는 아이도 있었다. 모두 저마다의 지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엔 괜찮은 이들도 있었다. 텔레비전 속에서나 보았던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이 있는 아이들. 허나 그 아이에게도 매일 밤 몰래 울고 싶은 상처 하나쯤은 있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이 가진 상처의 크기와 깊이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의 작은 상처 하나가 다른 백 개의 상처보다 가장 쓰라린 법이니까.


Cafe Scarecrow, Auckland, 출처: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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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저마다 아픔을 품고 산다는 사실은 내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매일 밤 베개에 파묻혀 눈물을 흘리고, 일기장에 미운 사람을 욕하고, 신에게 제발 행복하게 해달라고 애원하다시피 기도를 나만 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이 사람도, 내가 사랑했던 사람도, 내가 알지 못하는 저기 지나가는 사람도 모두 그런다고 생각하니 위로가 되었다. 나는 분명 너와 다른 존재이지만, 너와 완전히 다른 존재는 아니었다. 그런 너와 내가 가슴속에 상처를 품고, 달래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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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질문이 이어지는 시간은 흐르고, 내 앞에 쌓이는 것들이 많아졌다. 걱정, 꿈, 분노, 깨달음, 사랑, 슬픔, 행복, 후회 같은 것들. 그것들이 ‘나’라는 것을, 또한 ‘너’라는 것을, 마침내 그것이 ‘삶’이라는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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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 각자의 상처를 잘 달래며 살아요. 서로의 상처도 품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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