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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Dec 02. 2016

예쁘다, 너.

라고 자주 말했던 너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해

Cafe 'Bestie', Auckland, 출처 : 이은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조금 덜 받는 것들이야. 가장 좋아하는 시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시집의 시가 아닌 그 안에 있는 시골을 배경으로 한 잔잔한 시야. 음악도 앨범의 타이틀곡보다 사람들이 잘 챙겨 듣지 않는 조용한 노래를 가장 좋아해.

그렇게 조용하고, 잔잔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덜 묻은 것들. 그래, 맞아. 이미 눈치챘겠지만, 다 너에게서 배운 것들이야. 너의 취향이 어느새 나의 것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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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보는 하늘, 길가에 핀 꽃, 가게의 작은 소품, 나무의 그림자, 책상의 귀퉁이에 있는 낙서 같은 것들. 다른 이였다면 보고도 지나쳤을 걸 넌 아이처럼 너무도 좋아했지. 같은 것을 봐도 다른 시선을 가진 네가 처음엔 너무도 신기했어. 내겐 지루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네게는 예쁘다고 하니까. 그래서 네가 궁금했고, 또 그래서 결국은 널 좋아했던 것 같아. 작은 것들, 잘 보이지 않는 것들, 소외된 것들,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너. 나는 그런 너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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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눈은 자주 반짝였고, 그 눈으로 본 대상은 덕분에 특별해졌지. 

그렇게 나를 바라봐줄 땐 난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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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너만의 방식으로 사진을 찍었지. 처음엔 너의 사진을 보았을 때 ‘뭐, 이런 것을 찍지’ 했고, 널 알아갈수록 ‘이렇게 찍을 수도 있네’ 했고, 지금은 네 사진만큼 내 마음에 꼭 드는 것은 없는 것 같아. 예쁜 것을 예쁘게 찍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들을 예쁘게 찍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들을 평범하게 찍는 사진. 사진을 찍을 때에도 한 장을 위한 여러 장을 찍는 것이 아니라 한 장을 위한 한 장을 찍는 너. 그리고서는 카메라는 가방에 넣어버리고, 그것에 오래도록 시선을 두었지. 마치 눈으로 사진을 찍는 것처럼. 넌 그냥 그것과 풍경이 되는 것을 좋아한 것 같아. 그냥 너는 그 순간에 녹아있는 것을 사랑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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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은주

그런 너와 함께 하면서 나도 모르게 너의 시선을 따라 하게 되었어. 너의 시선이 멈춘 곳에서 나의 시선도 멈추었어. 그런데 정말 그렇더라.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마음을 주고, 눈이 다가가니 어느 것 하나 하찮고, 별 것이 아닌 것이 없더라. 모두 가지각색으로 예뻤어. 참 고마워. 너에게 예쁜 시선을 배웠어. 덕분에 나의 순간, 순간들이 몇 배는 아름다워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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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늘은 너무 예쁘더라. 해가 지는데 분홍 구름이 동동 떠다녀서 한참을 쳐다봤어. 그러다 네 생각이 났어. 지금 내 옆에 없는 넌 아마 나처럼 한참을 하늘을 바라봤겠지.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예쁘다, 하면서. 이 순간을 오로지 느끼고 있겠지. 너의 몸을 열어볼 수 있다면 온통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아. 그런 수천 번의 순간을 놓치지 않은 너니까. 그 순간들을 전부 다 기억하지는 못해도 네 안에는 분명 차곡차곡 쌓여있을 거라 확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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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눈과 예쁜 마음과 예쁜 생각을 가진 너. 조금은 비뚤어진 나에게도 예쁘다, 말해주었던 너. 


내가 아는 것 중에 가장 예쁜 네가 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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