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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Mar 06. 2017

사랑이 져버리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의미도 없이 


*

그래. 이제는 변명을 하지 말고 인정하자.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아픈 사실이지만 빙빙 둘러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말을 하자.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성격차이도 가치관의 차이도 아닌 사랑하지 않음이라고.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 말을 하기까지 왜 이렇게 긴 시간이 걸렸는지. 왜 그렇게 많은 변명들이 필요했는지.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너와 나의 성격과 가치관이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어. 성격과 가치관이 달랐기에 우리는 서로 더 맞춰가야 했고, 그러지 못한 부분은 홀로 감수해야 했지. 점점 네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많아졌고, 나는 너에게 알게 모르게 투정을 했었지. 나중에는 그런 얘기마저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 난 늘 네가 더 괜찮은 사람이기를 바랐어. 아마 나의 이런 이기적인 바람에 너는 힘들었을 거야. 버거웠을 거야. 있는 너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미안해. 


나와 당신의 그 틈의 간격을 걸었다가, 폴짝 뛰었다가, 쪽배를 타고 건너다가, 마침내 바다처럼 아주 깊고 넓어져 우린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게 되었지. 


-

그래.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어. 나는 너를. 나의 미래에 네가 보이지 않을 만큼. 우리라는 이름이 무거워지는 무게 만큼. 널 너무도 사랑했지만 그렇게 되더라. 너와 있는 시간과 널 향한 나의 마음이 불편해지면서 몇 번이고, 수십 번이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결국 돌아오는 답은 하나였어. 차가운 햇살은 햇살이 아닌 것처럼, 마음이 져버린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더라고. 난 널 사랑하지 않게 되었어. 사랑했었을 뿐이었지. 


-

사랑이 져버렸어. 

이 말은 왜 다른 것보다 슬플까. 꽃이 지거나, 나뭇잎이 지거나, 하루가 지거나, 별이 지거나, 계절이 지거나, 한 해가 지는 것처럼 지는 것들은 참 많은데 왜 훨씬 더 아프고 슬플까. 다른 것들은 또다시 볼 수 있고, 찾아오는 것이지만 사랑은, 너는 그러지 않으니까. 한 번 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기에 이리도 슬픈 것이겠지. 사랑이 져버리자, 우리의 관계도 져버렸고, 우리의 추억과 미래까지 모두 져버려 빛을 잃었어. 모두 슬픔으로 물들어버렸어. 

참, 고작 사랑이 져버렸을 뿐인데. 왜 많은 것들이 흔들리고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 


꽃이 지고, 별이 지고, 나뭇잎이 지고, 계절이 지고, 한 해가 지는 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왜 져버리는 것일까. 사실 아무런 의미는 없고, 그냥 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의미야 나중에 우리가 붙이는 것일지도. 

사랑이 져버렸는데, 어떤 이유나 의미가 있을까. 그렇지만 그냥, 이란 말을 붙이기엔 너무도 슬프다. 설명이 되지 않는 동시에 모든 것이 설명이 되는 그 단어. 그냥.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 별과, 흔들리지 않는 바람과, 아무도 읽지 않는 책도 있는 것처럼 사랑도 그만, 그냥 져버리는 것이라고. 


그래서 너무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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