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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Nov 04. 2016

잔인한 밤

결코 이길 수 없는 밤과의 싸움에서

사진 출처: 이은주

이렇게 밤이 찾아오면 나는 또 네 생각을 해. 

너는 잘 지내는지, 일은 잘 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그냥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생각.

밤은 잔인해. 따뜻한 햇볕이 없고, 차가운 밤 공기만 나를 감싸. 

밤은 사람이 외롭고 고독한 존재라는 건 어떻게 아는지 잔인하게도 지난날들을 떠올리게 해. 따뜻하고, 다정하고, 눈이 부시도록 빛났던 지난날들. 

아무것도 책임지지 못할 거면서, 아니 책임지지 말라며 자꾸만 지난 기억들을, 그때의 우리를, 끝내는 너를 떠올리게 해. 


나는 그런 밤에게 지지 않으려고 책 한 권을 다 읽고, 몇 곡의 음악을 연속해서 듣고, 몇 장에 걸쳐 일기까지 쓰지만 언제나 나는 기나긴 밤과의 싸움에 지곤 해.

읽고 있는 책의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백에서, 듣고 있는 노래의 음과 음 사이의 찰나의 멈춰진 호흡에서, 쓰고 있는 일기의 글자와 나의 생각 사이사이에 네가 나타나. 

어김없이, 원래 너의 자리였다는 듯 당연하게 나타나 내 머릿속을 어지럽혀. 


사실 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걸 알아. 

감당하지 못할 거면서 저질러버린 나의 잘못이야. 

장담하지 못할 거면서 쉽사리 나의 마음을 정해버린 나의 잘못이야. 

널 끊임없이 그리워할 거면서, 널 이렇게 잊지도 못할 거면서, 아니 잊을 수 있을지도 확신조차 못하면서 널 잊겠다고 섣부른 결정을 내린 나의 잘못이야.

그래, 내 이기적이고 서투른 다짐을 내 마음이 쫓아가지 못함이지.


너도 분명 지금 나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사랑에 빠졌던 순간도, 사랑을 했던 시간들도, 또 이별까지도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지나가버려서 너도 순식간에 일어난 이 소용돌이가 당황스러울 거야.

많은 날들이 아프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조차 모르겠지. 

다 아는 듯이 말하고 있지만, 사실 나도 하나도 모르겠는걸. 

나도 이 버거운 감정에 깔려있는 것 말고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길고, 어두운 밤에 삼켜 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이렇게 글을 써.

사진출처: 이은주

네가 정말 너무도 보고 싶어.

이렇게 길게 썼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뿐이야.

네가 보고 싶어. 너의 커다란 눈과 날 바라보던 눈빛과 표정이 눈에 선해. 내게 해주었던 사랑의 표현들 또한 아른거려. 분명 아프고 힘들었던 순간들도 있었는데, 왜 행복한 기억만 나는 걸까. 너와 걸었던 길, 눈이 마주치던 찰나의 순간, 같은 공간에 함께 했던 순간, 같은 노래를 들었던, 너와 내가 우리였던 때가 생각이 나. 

이제는 모두 지나간 시간이 되어버려서, 네가 내 옆에 없어서, 아른거리고, 애틋하고, 마음이 아프다. 


잔인한 밤이 너를 불러냈으니, 나는 끝내 밤을 이길 수 없을 테니, 그저 오늘 밤도 너를 그리워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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