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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Nov 02. 2016

망각의 이유

다시 사랑하기 위함이 아닐까.

겨우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왜 벌써 우리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까요. 우리는 6년이란 시간을 함께 했었는데, 지나간 시간과 기억은 어쩜 이리도 빠르게 희미해지는 건가요.

-

내가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나요?”

“아니면 당신은 내게 힘든 것을 말하곤 했나요?”

당신은 대답을 해주지 않는 대신 잘 생각을 해보라고, 정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지금의 당신만 봐달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새벽에 연락을 주고받았기에 당신은, 지금 당장은 말고 날이 밝고 공원이나 카페에서 생각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내가 생각에 빠지면 밤을 샐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당신이기에 당부의 말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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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카페에 가고, 공원에 갔습니다. 우리가 어떤 관계였는지 생각을 했습니다. 잘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도 카페에 가고, 공원에 갔습니다. 당신의 대해, 나의 대해, 우리라는 관계의 테두리에 있었을 때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이 아님에도 모든 것들이 흐릿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당신과 헤어지고,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났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의 관심은 온통 그 사람에게만 있었으니까요. 어쩌면 당신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감당하기 버거워 그저 모든 기억을 잊기에만 급급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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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모든 기억들을 완전히 잊지는 않았습니다. 잘 생각해보니 당신과 나는 대화를 많이 나누었지만, 부딪쳤던 적이 참 많았지요. 그래서 나는 당신과 생각이 많이 다르다고 느꼈고, 나중에는 부딪치는 것이 싫어 그런 대화는 피하기도 했어요. 이제껏 겨우 두 명의 남자를 만났는데 당신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었고, 짧게 만났던 그 사람과는 아예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내가 늘 위로를 해주는 입장이었고, 내가 힘이 들 땐 말도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 삭히기만 했습니다. 그랬기에 우리가 헤어졌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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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사랑에 빠지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두 사람이 사랑하는 마음의 깊이가 비슷해야 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고, 기댈 수 있는 관계여야하고, 배려와 인내는 필수이지요. 그리고 대화가 잘 통하면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질문을 했던 그 밤으로 다시 돌아가서, 나는 왜 당신에게 그런 물음을 던졌을까요. 당신과 내가 다시 긴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는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과연 우리가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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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나는 아직도 나를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금껏 사랑해왔음에도 사랑이 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미워하고, 상처를 주고받았으면서 또 다시 사랑을 찾다니요. 또 다시 사랑의 가능성을 궁금해 하다니요. 인간이 망각의 동물인 것은 다시 사랑하기 위함이 분명해요.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하고, 영원히 잊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면 다시 사랑 따위는 못 할 텐데. 애매하게 어렴풋이 흔적만 남아 사랑의 아픈 점은 잊어버리고, 사랑의 가능성만을 쫓아다니는 것이지요. 사랑을 못할 거라고 장담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늘 사랑에 상처를 입어 눈물로 지새운 밤들이었지요. 이제는 나도 나를 모르겠고, 사랑도 모르겠으니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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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을 다시 사랑할지도, 또 누군가를 사랑할지도, 아니면 영영 사랑을 못하게 될지도. 나는 망각의 동물이고, 사랑은 아름다우면서도 잔인하다는 것만이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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