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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회사

by 서로를 우연히

첫 직장에서의 기억을 뒤로한 채

나는 다른 회사로 출근하게 되었다.


회사를 고를 때 워라밸을 가장 중점적으로 보았다.

내 인생에서 두 번의 철야는 없길 바랐기 때문에

종잇장 같은 내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곳을 원했다.

밤 10시 전 퇴근, 주 5일 근무, 식사시간이 제공되며 출장을 가지 않는 것이 내가 원하는 근무 조건이었다.


모든 것 이 갖춰진 곳이라 전환형 계약직이라는 점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몸담았던 곳보다 조금 더 좋은 곳에 더 높은 직급으로 출근하게 되어 감사했다.


너무 들떴던 것일까?

낙하산이 장악한 이곳의 병적인 문제점을 파악하는 시간은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퇴사를 하는 게 정답처럼 느껴졌지만 좋은 조건을 두고 나가기 아까워 며칠밤을 고민했다.


커리어 욕심에 일단 최대한 버텨보기로 했다.

낙하산의 꿀잠타임을 위해 그 물건의 업무까지 죄다 내게 떠넘겨져도, 그로 인해 야근을 하고 주말에 출근해도 비용을 청구했지 문제를 삼지는 않았다.


업무 폭탄보다 힘든 것은 낙하산의 심심풀이 땅콩이 되는 일이었다. 그 물건은 한 명씩 번갈아가며 왕따를 시키는 고약한 취미가 있었고, 주된 사유는 기분상해죄였다.


본인이 주도하는 왕따질서의 흐름에 동조하지 않는 자, 본인의 나태한 근무태도나 무능을 지적하는 자에게는 가차 없는 응징이 가해졌다. 같은 기한 내에 본인의 일까지 2인분을 하느라 시간이 촉박한 나를 불러내 3시간씩 타인의 험담을 늘어놓는 낙하산이 정말 가혹하게 느껴졌다.


이렇다 보니 낙하산의 후임은 세 달을 넘기는 법이 없었다.

5일 차에 그만둔 사람도 있다.


안 그래도 일이 많은데 공백까지 또 메워야 하다니

이쯤 되면 우주가 나를 억까하는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그럼에도 사회생활이라는 단어로 포장하며 기존에 형성된 분위기에 편승하기 위해 노력했다.


상황은 점점 나빠져갔고 그 사이 두 명이 더 퇴사했다.

아무리 흐린 눈을 해봐도 브레이크가 필요해 보였다.

업무에 지장을 준다는 핑계로 낙하산의 호출을 거절했다.

업무 외적인 얘기는 철저히 차단하며 밥도 혼자 먹었다.

자발적으로 고립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본인이라는 리더십을 거절한 나라는 팔로워십의 행동은 당연하게도 기분상해죄에 해당되었고, 낙하산은 나를 배신자라고 칭하며 반드시 찍어내고 말겠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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