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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는 날, 굿바이

너를 보지 않아도 되는 건 정말 행운이야

by 서우 Jan 16. 2025

예고한 대로 낙하산의 횡포는 상상을 초월했다. 간혹 주변에 회사에서 생긴 일을 털어놓을 때면 요즘 드라마도 그렇게 쓰면 욕먹는다며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정도였고, 나 역시 기막힌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하고 싶어 심리상담을 병행하겨우 버텼지만, 번번이 이런 곳만 골라 입사하는 스스로를 원망할 때 발생하는 자기혐오를 극복하는 것은 어려웠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잘못은 아니지만, 그 물건을 원망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아 나의 선택을 탓하기로 했다.


나의 성과에 이름을 얹거나 결과물에 적힌 내 이름을 본인의 이름으로 바꿔치기하는 일은 부지기수, 내 기획안을 트집 잡아 캔슬한 뒤 본인이 가져다 쓰는 일도 적잖이 있었다.

노골적인 견제에 맞서가며 힘들게 내 공을 지켜낸 나의 수고를 비웃듯 사건은 벌어졌다.


내가 진행하던 대규모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그 문제적 낙하산승진과 나의 방출이 동시에 결정된 것이다. 당연하게도  프로젝트의 새 담당자는 낙하산이었다. 억울한 마음에 사내 인권센터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나의 SOS에 돌아온 답변은 퇴사 권유였다.


저 사람은 여기를 나가면 갈 곳이 없지만 나는 불러줄 회사가 많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시작으로, 남은 기간 동안 인계를 마치고 나가면 되지 않겠냐는 마무리 나는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 적다 보니 미온적인 나의 대응이 아쉽다. 노동청이라도 가볼걸 그랬나.


아무튼 이런 영양가 없는 대화를 끝으로, 최선을 다했기에 일말의 아쉬움도 없던 두 번째 직장에 사직서를 냈다. 벚꽃이 지고 나무들이 초록 옷을 입기 시작한 4월 무렵의 일이다.


원하던 대로 나를 찍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하여 이긴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너와 일할 수 없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고, 더 이상 너와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당시 나에겐 더없이 큰 행운이었으니.


의도치 않게 낙하산 인사와 갈등이 있던 또 다른 직원이 비슷한 시기에 퇴사하면서 우리는 전임 퇴사자들과 종종 모임을 이어가는 중이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들은 그곳의 소식은 나의 퇴사 이후 2명이 추가로 퇴사했고, 구인난이 심해진 나머지 외국인 직원을 고용했다는 것이었다. 예상했던 일임에도 너무나 통쾌해서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나는 여전히 생계를 유지하는 비용을 벌어들이는 행위에 노동력 제공 이상의 희생이 포함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한정된 업무시간 속에서 나의 일을 빨리 마친 뒤 의무적으로 타인의 일을 대신하거나, 공들여 마친 프로젝트를 넘겨주거나, 누군가의 마리오네트가 되어주는 일 같은 것. 주어진 업무만 성실히 수행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밥벌이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나의 크나큰 착각이었던 것 같은데도 쉬이 납득이 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라는 경로에서 이탈했다. 언제 다시 합류할 수 있을지, 다음에는 벗어나지 않을 수 있을지 아직 모른다. 그저 내가 잘 해내지 못한 과정을 살아가는 모든 직장인들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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