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호기롭게 사직서를 지르고 나올 수 있던 배경에는 수개의 서류 합격이 있었다.
정말 솔직하게 나는 그중에 한 곳으로 바로 출근하게 될 줄 알았다. 요즘 같은 고용한파에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자만은 언제나 독이 된다. 잇따른 필기시험과 면접탈락에도 크게 상처 입지는 않았다. 별의별 꼴을 다 본 덕에 회사라는 곳에 기대나 미련 같은 것이 없어서였다. 회사가 다 거기서 거긴데 불러주는 곳으로 가지 뭐.
마지막 방학이라는 생각에 신나게 놀러 다녔다. 부산 여행도 가고, 좋아하는 독립서점 투어를 하고, 눈여겨본 북카페에서 하루종일 책을 읽었다. 좋아하는 것만 잔뜩 누려본 게 얼마 만인지. 취향에 꼭 맞는 책을 발견할 때면 책갈피에 좋아하는 향수를 뿌려 가장 감명 깊은 꽂아두는 습관이 있는데, 살면서 가장 많은 책갈피를 꽂은 시기였다.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읽다 보니 갈피의 위치가 옮겨지는 일도 있었다.
글에서 희로애락을 느끼고, 위로를 받고, 교훈을 얻다 보니 나도 누군가의 영혼에 충만함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나 회사원이라는 직업으로 평생을 살고 싶은 게 맞나?
글을 쓰는 것으로 생계유지가 되지는 않을 텐데, 회사를 다니면서 병행하는 것이 가능한가?
내가 쓰고 싶다고 전부 책이 되지 않을 텐데, 어떻게 써야 책이 되는 걸까?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 수많은 물음에 답을 구하기에 나는 거의 매주 면접과 취업 필기시험을 봐야 했다. 자연스럽게 내 눈앞에 주어진 환경을 살아가게 되었고, 글쓰기 욕구를 충족할 임시방편으로 블로그를 다시 운영하기 시작했다. 시기를 놓친 과거의 기록들을 늦게나마 업로드하며 나름대로 글 쓰는 연습을 한 것이다.
그렇게 나의 여름은 채용 공고가 뜨면 이력서를 내고, 주말마다 시험을, 합격하면 면접을 보는 주된 일상 속에서 간간히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이상과 현실이 타협하여 내놓은 절충안으로 구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