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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 사이

by 서우 Jan 21. 2025

내가 호기롭게 사직서를 지르고 나올 수 있던 배경에는 수개의 서류 합격이 있었다.


정말 솔직하게 나는 그중에 한 곳으로 바로 출근하게 될 줄 알았다. 요즘 같은 고용한파에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자만은 언제나 독이 된다. 잇따른 필기시험과 면접탈락에도 크게 상처 입지는 않았다. 별의별 꼴을 다 본 덕에 회사라는 곳에 기대나 미련 같은 것이 없어서였다. 회사가 다 거기서 거긴데 불러주는 곳으로 가지 뭐.


마지막 방학이라는 생각에 신나게 놀러 다녔다. 부산 여행도 가고, 좋아하는 독립서점 투어를 하고, 눈여겨본 북카페에서 하루종일 책을 읽었다. 좋아하는 것만 잔뜩 누려본 게 얼마 만인지. 취향에 꼭 맞는 책을 발견할 때면 책갈피에 좋아하는 향수를 뿌려 가장 감명 깊은 꽂아두는 습관이 있는데, 살면서 가장 많은 책갈피를 꽂은 시기였다.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읽다 보니 갈피의 위치가 옮겨지는 일도 있었다.   


글에서 희로애락을 느끼고, 위로를 받고, 교훈을 얻다 보니 나도 누군가의 영혼에 충만함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나 회사원이라는 직업으로 평생을 살고 싶은 게 맞나?


글을 쓰는 것으로 생계유지가 되지는 않을 텐데, 회사를 다니면서 병행하는 것이 가능한가?


내가 쓰고 싶다고 전부 책이 되지 않을 텐데, 어떻게 써야 책이 되는 걸까?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 수많은 물음에 답을 구하기에 나는 거의 매주 면접과 취업 필기시험을 봐야 했다. 자연스럽게 내 눈앞에 주어진 환경을 살아가게 되었고, 글쓰기 욕구를 충족할 임시방편으로 블로그를 다시 운영하기 시작했다. 시기를 놓친 과거의 기록들을 늦게나마 업로드하며 나름대로 쓰는 연습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여름은 채용 공고가 뜨면 이력서를 내고, 주말마다 시험을, 합격하면 면접을 보는 주된 일상 속에서 간간히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이상과 현실이 타협하여 내놓은 절충안으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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