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모노그램

13. 오랜만의 산책

<모노그램> 글 하국주/ 그림 서울비

by 미혜 Seoul B




동생이 친구에게 줄 선물을 사겠다며 근처 도매 화원까지 산책하자고 졸랐다. 산책도 화원도 그다지 취미가 아니라 망설였지만 밥도 먹었겠다 운동 삼아 가기로 했다.

화원 입구에 늘어선 얇은 검은색 1회용 플라스틱 화분들.

그 안에서 알록달록 미니 다육이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덤덤하게 구경만 하고 있었더니 동생이 괜찮은 것 있나 찾아보라며 채근했다. 마지못해 허리를 숙이고 이것저것 살펴보기 시작했다. 집에 둘 게 아니라 선물할 거라서 더 꼼꼼히 골라야 했다. 이건 잎에 상처가 있고, 저건 너무 웃자랐고, 하는 식으로 화분들을 일일이 들었다 놨다 하며 관찰했다. 손이 빠른 아주머니들은 이것저것 능숙하게 한 아름 잘만 들고 가는데, 우리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이럴까 저럴까 한참을 고민했다. 색깔과 화분의 조화, 키울 장소와의 적합성, 상대방의 취향, 키우는 방법의 난이도 등 헤아려야 할 것들이 많았다. 물론 평소의 선택 장애 기질도 한몫 단단히 했을 것이고.

한 시간 남짓 골랐을까, 마침내 동생은 선택지를 추리고 추려 선물에 적합한 깔끔한 녀석을 하나 골라냈다.

이제 남은 것은 후보들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값을 치르는 일뿐이었다.

그런데 무슨 객기인지 선택지에 올렸던 다육이들 중 한 개 정도는 꼭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성공한 식물 기르기라고는 규칙적으로 물만 갈면 되는 개운죽이 전부인데, 화단에 있는 나무 때문에 볕도 잘 안 들 텐데, 겨울이라 베란다가 제법 추울 텐데, 하면서도 결국 2개나 골라 계산대로 갔다. 너무 오래 바라보다가 정이 든 건지, 아무튼 그렇게 빨강이 1개와 초록이 1개를 각 2천 원에 구매했다. 내친김에 동생에게도 본인이 원하는 예쁜이로 하나 투척.

집에 돌아와 시작한 분갈이는 동생의 진두지휘 아래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원래도 깜찍했던 것들이 분갈이 후에는 귀티까지 흘렀다.

베란다 진열대 맨 위칸에 녀석들의 자리를 마련했다. 춥지만 며칠이라도 햇빛을 좀 받아야 한단다. 물조리개로 살그머니 물도 부었다. 흙 위에 덮은 작은 자갈들이 안전하게 젖어들었다. 끝으로 베란다에 늘어놓은 신문지와 화분 갈이 용품들을 정돈하고 바닥에 물을 뿌려 빗자루질을 했다. 그리고 조용히 베란다 문을 닫았다.

식물 알못인 입장이라 인터넷을 열고 녀석들의 정확한 이름과 양육법을 확인해야 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블로거들이 다육이 기르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었다.

덕분에 실외/실내용 비닐 온실과 영양제는 물론이고 부족한 햇빛을 대신할 식물 LED 램프가 다양한 품질과 가격대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비록 날씨는 춥고 주인은 똥손이지만 이런 정보들을 잘 활용하면 녀석들이 지금의 통통함을 잃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문득, 충동적으로 들고 온 2천 원짜리 화분 하나를 기르는 데도 이렇게나 마음 쓸 일이 많은데 자식을 키우는 이들은 그 커다란 책임감을 매 순간 어떻게 감당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작고 소중한 생명들에게 물을 주고, 흙을 주고, 햇빛과 바람을 보내어 마침내 아름다운 꽃을 피울 때까지 아낌없이 스스로를 내놓아 기르는 마음. 새삼스레 경외감이 들었다. 역시 부모 됨이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맞는구나, 다시금 주억거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seoul b_창가의 선인장_.jpg 창가의 선인장_illustration by Seoul B (c) 2019 서울비




• 매거진 <모노그램>은 하국주 님의 글과 서울비의 그림이 함께한 컬래버레이션 작품입니다. 2019년 하반기 (9월~12월) 서울비의 브런치에서 한시적으로 매주 월요일에 발행합니다.


• 매거진 <모노그램>과 <B급여행기>를 발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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