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의 시 2

[단편소설] 나를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것들. 18

by 서울길

차가 내뿜는 불빛조차도 어둠 속에 묻히는 곳. 밤새 달려 도착한 어딘가는 태수 씨가 어렸을 적 잠시 살던 곳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일단 조용히 지내다가 사장님하고 공장 사람들과 연락하면서 사태를 지켜본 뒤 대응하자고 하였다. 태수는 평소에 작업반장을 벼르고 있었고 내가 겪은 사건은 일종의 큰 명분이 되어버렸다. 사람을 강제로 추행한 것과 죽기 직전까지 팬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큰 죄인지 모르겠지만 태수는 연신 걱정 말라고 하고 한 뒤 상황을 지켜보고 상황이 정리되고 잠잠해지면 다시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하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태수 씨는 몰라도 나는 그곳에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 직감하였다. 구겨 신은 신발과 산발이 된 머리카락들은 그대로였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사무실에서 일을 마치고 기숙사로 퇴근한 뒤 밥을 짓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서 저녁을 먹었다. 나는 단지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병신인 나를 세상은 가만 놔두지를 않았다. 어찌 되었든 나에게 트러블이 생기면 결국에는 내가 항상 가해자가 되었다. 제대로 말이 통하지 않는 나는 항변할 능력도 없었고 결국 마지막에는 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무리에서는 여지없이 쫓겨났었다. 간신히 잡은 직장에서도 나중에는 반장에게 꼬리를 친 장애를 가진 미친 여자로 기억될 것이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고 창밖에 놓인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그대로 나의 존재가 사라지고 잊혀졌으면 하고 바랬다.


태수 씨도 이성이 돌아오고 난 후 본인 앞에 놓인 현실이 걱정되었는지 자동차 핸들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거듭 한숨을 쉬었다. 부모가 버린 자식들, 그리고 세상에서도 천대받고 자란 두 남녀는 바깥으로 나지막이 흐르는 실개천의 물소리만 들리는 인적 없는 도로에서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신세를 저주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몸을 피할 방편으로 태수가 알고 있는 버려진 집에 들어가서 잠시 피신하였다. 노부부가 살던 집이었는데 돌아가시고 자식들이 정리 조차 하지 않고 떠나버린 집이었다.


거의 1주일 가까이 그 집에서 식음을 전폐하였다. 눈을 감으면 나에게 달려드는 작업반장의 추한 모습과 이렇게 꺾여버린 일상을 생각하며 속에서부터 터지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놈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출근해서 지극히 평범하게 일을 하고 잔업을 처리했을 것이다. 태수는 이런 나를 보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어느 날 태수가 빵과 우유를 사온뒤 한동안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방치된 느낌이 엄습하자 이렇게 죽음으로 가는 거라 생각했다. 도저히 일어날 힘이 없었다. 그래 이렇게 죽어버리고 먼 훗날 백골이 되어 발견되겠지.


"미수, 이거 받아,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일단 살아남자..... 제발!"


그런데 태수 씨는 나를 버리고 도망간 것이 아니었다. 내가 꼼짝 않고 있던 그 방으로 돌아와서 태수 씨가 건네준 것은 바로 그 작업반장을 찔렀던 인두였고 나는 한동안 그 오래된 인두를 부여잡고 울었다.


"회사에 가서 사장님하고 만났어, 원래 평이 안 좋았던 놈인데 계속 놔뒀더니 이런 사고가 났다고, 알아서 조용히 처리하신대 이제 다시 시작하자.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어."


태수는 나의 퇴직금까지 챙겨서 돌아왔다. 결국 독립을 하면 빨리 안정된 직장을 다니겠다는 희망사항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졌다. 내가 말을 제대로 할 줄 알아서 그놈이 하던 더러운 짓을 처음부터 회사에 알렸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매일 분노가 치밀었고 그 화병은 나의 온몸을 마비시켰다.


그로부터 태수 씨의 간호로 한 달 즈음 지나 겨우 안정이 되었고 일단 먹고살아야 됨과 동시에 그동안 보호해 준 태수 씨에게 빚도 갚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같이 일을 시작했다. 폐 자재를 가져와서 피복이나 불순물을 끄집어내고 금속만 분리한 뒤 고물상에게 파는 일이었다. 상태가 좋아졌던 손이 다시 거칠어지기 시작했지만 억척같았던 태수는 금방 일감을 가져와서 버려진 폐가 앞에서 일을 벌였다. 비닐하우스 철거, 야채 소분 등등 무슨 일이든 돈이 되는 건 무엇이든 했고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이렇게 몇 년을 버텼을까 제법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을 때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 태수와 나 둘 다 돈이 생겼다고 어디 찾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이렇게 태수와 나는 알게 된 지 3년 만에 혼인신고를 하였다.


"이건 '가연성'이라는 말이에요. 조심히 다뤄야 돼요."

"알아 나도, 자꾸 그렇게 가르치려고 들지 마."

"근데 전에 이거 난로옆에 두었다가 큰일 날뻔했잖아요."

"하....... 너 많이 배워서 좋겠다? 근데 고졸 검정이라며? 니 남편은 초등학교도 못 나와서 쪽팔리냐?"


같이 부대끼며 살며 이렇게 태수와 부딪치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알려주려고 한 건데 본인이 몰랐던 것을 말해주면 태수는 가슴속에서 억압된 것이 심하게 터진 것 마냥 불타올랐다. 그의 컴플랙스는 부부관계조차도 점점 일방적인 강압적인 관계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똑똑한 남자가 좋으면 서울에 가서 대학교 나온 남자 만나. 근데 그 남자들이 널 만나줄까?"


보통의 생활, 그리고 부부 관계를 맺을 때도 태수 씨는 나를 점점 더 거칠게 다루었다. 내가 아니면 너는 어디 갈 곳도 없는 처지라는 것을 강요하였고 굴욕적인 순종을 강요하였다. 점점 나는 말을 더 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 사이에 계획과 대화라는 건 없었다. 이미 시작부터 정상적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으나 그는 나를 억누르는 행위에 중독된 거 같았다. 첫째가 탄생하고 3년 뒤에 둘째를 낳았고 아들이 있어야 된다고 해서 4년 뒤에 셋째를 낳았다. 그 아이들은 오로지 태수의 아이였다. 나는 나의 유전자가 혹시나 대물림될까 두려워서 아이를 원치 않았지만 그에게는 들리지조차 않았다. 다행히 아이들은 별문제 없이 쑥쑥 잘 커나갔다. 아이들이 성장하자 그럴듯한 집을 장만하여 이사를 했고 납품할 것들을 잠시 보관할 임시 창고도 만들었다. 그 남자는 빈손으로 시작하여 이루어낸 것들에 대해서 대단히 만족스러워했고 가끔씩 나를 번쩍 들어서 안아주기도 하였다. 항상 거친 그만의 애정표현이었지만 그때의 순간은 나조차도 잠시의 행복으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후 태수는 어두컴컴한 천막창고에서 아이들을 종종 집합시켰다. 마치 예전 직장에서 작업반장이 생산팀과 물류팀을 집합시켰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보면 항상 똑같은 대답이었다.


"당신은 신경 안 써도 돼, 애들은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켜야 된다고, 싹수가 없으면 어디 가서 일자리도 못 구해."


멀리서 창고에서 힘 없이 나오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저 남자가 진짜 제대로 교육을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난 힘이 없었다. 태수의 집합이 끝나면 수연이는 집에 와서 가방을 챙기고 어디론가 향했고 선주는 선용이를 데리고 윗동네 성당이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이랬든 저랬든 아이들은 점점 커갔고 벙어리 자식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두 딸들은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그땐 우리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동네 주민들도 경외심을 가지고 우리 집을 다시 바라보았다. 두 딸들은 학력 콤플렉스를 가진 그에게 좋은 훈장이 되어주었고 집이 점점 커지고 자식들이 대학을 잘 갈수록 태수의 목과 어깨에는 힘이 점점 더 잔뜩 들어갔다.


하지만 태수의 어깨는 오래되지 않아 땅밑으로 꺼지다 못해 꼽추처럼 구부러졌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수연이는 거의 4년 만에 하얀 도자기에 담겨서 돌아왔다. 선용이는 우리 집 창고 안에서 태수를 거칠게 몰아붙였고 수연이는 그 어두운 창고 속에서 영원히 잠들게 되었다. 그 후로 선용이는 어디론가 달려 나가선 돌아오지 않았고 역시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집에서 며칠 동안 나는 선주와 함께 수연이의 유품들을 정리했다. 선주가 서울로 돌아가기 전날 선주는 수연이가 썼던 일기를 태수 씨 앞에 던졌다. 선용이가 했던 것처럼 큰 언니한테 사과하라는 말까지, 태수는 곧 눈이 뒤집혔고 선주에게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나는 가만있을 수 없었다. 선주에게 달려드는 태수를 향해 나는 몸을 던졌고 나와 태수 씨는 벽에 부딪혀 같이 넘어졌다. 뒤로 보이는 선주에게 필사적으로 외쳤다.


"선주야! 나가! 빨리!"


나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선주는 어둠 속으로 달려 나갔다. 태수 씨는 일어나려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나도 머리를 부딪쳤는지 어지러웠다. 혼돈에 휩싸인 머릿속으로 큰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좋은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런 곳에서 훌륭하게 큰 아이들을 지키지 못하고 어느 순간 방관자의 인생을 살았다. 아니 이제는 진짜 가해자의 일부이기도 하다.


"최태수, 우리 공장 다닐 때 생각나? 그 반장이 괴롭힐 때면 우리 둘이서 나중에 우리 같은 사람들 오면 괴롭히지 말고 잘해주자고 했지? 넌 왜 나의 자식들한테 그 개자식처럼 행동해? 다 보고 있었어. 선용이가 왜 널 창고로 데려가서 용서를 빌게 했냐고, 생각이나 해봤어? 넌 사람들이 안 보는 곳에서 너의 한풀이를 아이들한테 쏟아낸 것뿐이야. 우리는 부모의 자격이 없어, 수연이를 죽인 건 우리들이야."


집에서 라이터를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수연이를 삼킨 창고에 와서 라이터로 창고에 불을 지폈다. 이곳저곳에 불을 붙이자 금방 천막 창고에 불이 붙어서 타오른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안 돼!! 안된다고!!!"


창고에 불이 붙어 시뻘건 불길이 올라오자 태수가 놀라서 뛰어온다. 나는 창고로 달려가는 태수를 뒤로하고 선주와 선용이가 자주 갔던 언덕으로 향한다. 불에 덴 탄내가 나의 코끝을 스쳐가고 부딪친 머리에서 피가 점점 많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괜찮다. 이보다 더한 고통과 쓰라린 기억을 가지고 수십 년을 살았으니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들을 혹시 본다면 이제까지 어머니로서 아무것도 못한 것에 대해서 사죄해야 해야 할 것이다.


어둠 속에서 성당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인다. 문이 열려있는 것인가, 곧장 들어가서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선주와 선용이를 찾았다. 하지만 그 둘은 이곳에 없었고 다만 성당 벽면으로 수많은 메시지를 붙인 게시판이 보였다. 유독 크게 보이는 흰색 종이 위에 어떤 글이 희미하게 적혀있었다.


우리 집에 있는 어두운 동굴

아빠는 그 속에서 매일 악마가 되었고

누나는 그 속에서 영원히 잠들어야 했고

남은 우리는 매일 이곳으로 달려야 했다

도망가고 싶지만 도망갈 수 없었던 깊고 어두운 동굴


선용이가 썼음이 틀림없다. 태수가 이루어낸 작은 왕국에서 나의 아이들은 매일 지옥에서 사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 나는 볼펜을 찾아 그 글을 다시 반듯하게 적어놓았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아래에 적어놓았다. 이제는 더 주저할 것이 없음을 깨닫는다.


성당 바깥으로 나오자 창고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일렁인다. 창고를 집어삼키는 불기둥 위로 그때 가방을 메고창고를 달려 나가던 수연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수연아 이제 자유로구나........"


사이렌 소리와 마을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크게 들린다. 나를 쫒는 소리 같다. 그 소리를 피하고 싶어 절벽길로 이어지는 숲 속길로 달려간다. 잠시나마 행복했던 때 가족과 함께 걷던 길이었다. 멀리 환영으로 수연이와 선주, 선용이가 오라고 손짓한다. 나는 그들에게 달려가며 속으로 되뇌었다.


"얘들아 미안해. 나 때문에 너희들은 벙어리 자식이라고 평생을 손가락질받았지. 내가 사라진다면 차라리 나을지도 몰라.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바다 앞에서 달빛이 비치는 파도로 가는 길이 보인다. 다시 돌아오라는 큰 스님의 말씀이 들린다. 하지만 갈 수 없었다. 나의 존재와 삶의 과정은 결국은 죄악이었다. 잠깐의 행복 속에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망각하였고 나의 피붙이들을 지켜내지 못한 채 나중에는 가족이 만든 울타리 안에서 숨기에 바빴다. 이제는 그 업보를 청산해야지, 그러지 않고서는 나는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다.


저 멀리 창고에서 빠져나온 수연이가 엄마 하며 외치는 거 같았다. 나는 두 팔을 벌리고 광풍의 파도 속으로 나아간다. 거센 바람과 파도가 온몸을 때리고 지나갈수록 나의 눈은 점점 감겨갔지만 수면에서 그렇게 파도가 내치던 바다는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따스하고 평온했다. 내가 흐르던 피와 눈물은 곧 바닷물과 만나 하얀 파도와 함께 사라져 간다. 내가 사라짐으로 인해 남은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사이렌 소리의 멈춤과 함께 그 밤은 다시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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