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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찬 Mar 16. 2024

버스 기사가 가정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

부제:버스기사 추천 이유

버스 기사가 가정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



버스 기사 취업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시간에 속박받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노선, 같은 시간대를 매일 반복해 운전해야 하는 직업 특성 상, 어느 정도는 자유를 제한받는다. 굳이 따지자면 어느 직업이든 '반복'없는 일상이 어디 있겠냐만 버스는 좀 더 가혹하다.


그래서 10여 년 정도 근무 후에 개인택시로 전업하는 고참들이 꽤 된다. 진정한 자유를 맛보고자. 그런 자유가 가끔은 난폭운전으로 변질되기도 하지만.


시간에 얽매이는 직업이란 것을 달리 바라보면 '가정적'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도 된다. 매일 같은 시간대에 취침을 해야하기 때문에 밖에서 '뻘짓'을 할 수가 없다. 휴무일을 제외하면 연일 느긋하게 술 한잔 기울일 수도 없고, 즉흥적인 1박 여행을 떠날 수는 더더욱 없다. 술을 먹더라도 다음날 근무라면 2차는 그림의 떡이다. 그래서 보통 낮술로 위안 삼는 이들도 많다.


회식도 있을 수 없다. 전체 회식이란 것은 불가능하다. 가끔 몇 개월에 한 번씩 죽이 맞는 동료나 동년배들이 휴무를 맞춰 하루 거나하게 술 한 잔 기울이는 낙이 꽤 크다.


모든 행동은 일상의 계획 아래 진행되어야 하며, 그것이 엇나가면 버스 배차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시성'을 중요시하는 서울 시내버스 담당자들의 미간 찌푸리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고, 버스 업체 임직원들의 똥줄타는 소리도 듣게 된다.


버스 기사는 로봇처럼 움직이는 사람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버스 기사는 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참을성'과 '다정함'을 입력시켜 놓은 로봇처럼 말이다. 물론 그런 행동 제약이 '다정함'과 무조건 연결된다는 보장은 없겠지만.


...




버스 기사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파악되는 것도 다른 직업과 확연히 다른 점이다. 버스 노선과 번호가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거의 실시간으로 노출된다. 몇 번의 노선에 몇 번의 버스가 지금쯤 어디에 있는 지 다 파악된다는 것이다. (아내는 내 남편이 오늘 일을 하는 지, 어디에 있는 지 다 파악할 수 있다.)


세상에 이런 직업은 없지 싶다.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위치 공유가 쉽지 않은 이 시대에 버스 기사의 위치 정보는 전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공개되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나 깔끔한 직업인가. 클리어하다.


취업률이 곤두박질치고, 취업이 안 돼 경제난으로 극단적 선택이란 뉴스를 매일같이 보게 되는데, 난 버스 기사를 추천하고 싶다. 가정에 충실할 때라고 깨달았다면 더더욱 그렇다. 버스 기사로 3개월만 근무하면 아내에게 혹은 남편에게 "이렇게 가정적인 사람인 줄 몰랐어."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세상에 반복없는 직업이 어딨겠는가. 들춰보면 모두가 '노가다'인생이라 할 만 하다. 어깨 힘줘봤자 몇 년이다. 다 부질없음을 곧 깨닫게 될 지도 모른다. 책상에 앉아 일하는 게 좋을 수도 겠지만, 경중을 따질 수 없다는 얘기다.


퇴근 시간 눈치보며, 상사 폭언 들으며, 퇴근후에도 카톡으로 업무 하달을 받고, 휴가 후 산더미처럼 쌓인 업무에 시달리느니, 깔끔한 버스 기사가 백번 낫다. (과거 그런 생활의 스트레스와 비교했을 때 절반도 안 된다는 이야기는 이미 여러번 했다.) 일반 회사 사무직, 영업직 등등이 '축구'와 비슷하다면, 버스 기사는 '골프'에 가깝다. 독고다이다.


20대에 대기업 평균 연봉에 육박하는 월급을 손에 쥘 수 있어서일까. 최근에는 20대 버스 기사들도 많이 입사하고 있다. 자율 주행 버스가 걱정된다면 걱정 마시라. 개인적으로 향후 30년 내에 인간없는 버스는 달릴 수 없다고 본다.


나이들어 할 거 없어서 선택하는 직업이 아니다.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위해야 하며, 그들의 이동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사명감이 필요하긴 하지만, 원대한 사명감까지는 아니다. 꿈을 꿀 필요는 없다. 하루하루 집중하며 보람을 찾으면 그곳이 낙원일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에 충실하며, 주변 몇몇에게 관심을 둘 정도의 경제력도 되고, 여유로운 취미활동을 보장하는 생활이 가능한 버스 기사. 추천할 만 하다.



<버스 기사가 사무직보다 좋은 점이 있다면?>

https://brunch.co.kr/@seoulbus/102



https://naver.me/FHYJiG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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