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인맥 필터링'은 자연스럽게 거쳐진다. 필터링을 의도적으로 실행하여 주소록을 1천 단위에서 1백단위로, 혹은 1십단위로 내려놓는 '마음의 여유'는 횡단보도 신호바뀌면 건너야 하는 그런 일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있다. 우린 어린 시절 졸업식에서 누구에게든 듣고 말한다.
"꼭 연락해. 우리 자주 보자."
졸업식을 여러번 거치면서도 토씨하나 바뀌지 않고 반복적으로 내뱉지만 실상 남아 있는 연락처는 몇 없다. 있다고 해도 자주 연락하는 이는 드물다. 오랜만에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리며 "나 결혼해. 와 줄거지?"라고 얘기하는 것도 민망할 떄가 있지만 그것으로 우리의 연은 아직 끝이 아니라고 자조한다.
아이 낳고 중장년이 되어갈 즈음, 그 때 그 시절의 친구들, 혹은 사람들은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가. 몇 날 몇 일 밤새며 만든 PPT 파일을 만지작대는 치열한 순간에 그들이 생각날 리 없다. 약속을 해도 깨어지기 일쑤며, 모든 시공간의 1순위는 '일' 혹은 '가족'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오늘이 몇 월 몇 일이고 몇 시인지도 모르며 산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내가 열심히 살지 않으면 남는 게 없어. 그래서 너와 만나서 한가롭게 커피 한 잔 할 여유가 없단 말이야!"
라고 외치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나도 이렇게 살기 싫어.
라고 말하며 자신이 원하는 윈도우 바탕화면 속 주인공이 되어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취업에 실패하고 사업에 실패하면 '필터링'은 더욱 가속화 된다. 내가 원하지 않은 전화는 자주 오는데, 원하는 사람에게는 오지 않는다. 오랜 친구만이 위로가 될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그냥 수줍은 목젖같은 인생이 이어질 뿐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나를 찾아주는 이가 드물어진다. 자본주의 한복판에서 세상을 외치던 이들도 정년 퇴직, 혹은 희망퇴직, 구조조정 바람을 맞고 픽픽 쓰러지며 외마디 비명만 외친다.
"나 여기 있소! 아니, 있었잖소!"
청년 실업률이 어마어마하다. 길에서 만나는 젊은이들 중 5명 중 한 명은 실업자이며 이들 셋 중 하나는 취업을 포기했단다. 중장년층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노년층 취업이 늘었다는데, 신기할 따름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는 얘기다. 생활고가 힘들어 자살, 도피, 노숙을 선택하는 이들을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절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나이들며 '절망'이란 단어를 몇 번 꺼내봤는가. 없다면 거짓일 터, 이런 가운데 마음 속에서 고개 숙이지 않는 존재가 바로 가족일 것이다.
가족 생각해서 한 번만 더 힘내 보자.
버스승무사원. 죽는 것보다 쉬우며, 돈벌이 쏠쏠하고, 집안의 눈치를 보기는 커녕, 가정적인 가장이 될 수 있다. 조금의 노력으로 여러 명 웃음짓게 만들 수 있는 요람이 될 것이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외국인노동자가 여실히 채워지는 날에는 기사, 승객 모두 피해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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