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력은 학습보다는 경험의 대상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이 매년 습득하는 약 3천 개의 어휘 중, 교육을 통해 배우는 건 1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낯설고 어려운 단어를 열심히 배웠더라도, 그 단어에 노출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되죠. 그래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부모님들께서 자녀의 어휘력을 향상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이고요.
가장 기본은 ‘사전 찾기’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당장 ‘네이버 국어사전’ 앱을 설치해주세요. 그리고 모르는 단어를 만날 때마다 즉시 찾아보게 해주세요. 이게 몇 년 누적되면 국어 점수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낼 겁니다. 단, 정의를 외우게 하거나 옮겨 적게 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힘들다는 이유로 사전 찾기를 기피하게 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국내외 연구결과에 따르면, 단순히 사전 정의를 외우는 방식은 독해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합니다.
사전 앱을 볼 때는 정의를 읽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하단의 유의어/반의어도 꼭 살펴보게 해주세요. 가볍게 쓱 읽는 거면 충분합니다. 이렇게 어휘의 지도를 넓혀나가다 보면 어느새 글을 빠르게 이해하고 예측하며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사전 앱에는 『표준국어대사전』 정의가 기본으로 제시되는데, 종종 이해가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옆탭에 제공되는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을 눌러보세요. 제 경험상 더 쉽게 설명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례로, ‘기꺼워하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 ‘기껍게 여기다’로만 적혀 있으나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는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쁘게 여기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후자가 훨씬 쉽죠?
그런데 새로 접하는 단어가 있어야 사전도 찾아보겠죠? 또한 새로 배운 단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어야 온전히 머릿속에 기억될 수 있을 거고요. 이를 위해 부모님들께서 해 주실 수 있는 게 또 있습니다. 바로 자녀들을 새로운 단어에 노출시켜 주는 일입니다. 크게 두 가지 경로가 있습니다. 첫째는 부모님과의 대화입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어떻게 어휘를 배울 수 있겠냐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조금 더 어렸던 때를 떠올려 보세요. ‘전기가 뭐야?’, ‘내년이 뭐야?’, ‘왜?’, ‘근데, 왜?’ 너무 당연하고 사소해서 설명하기 어려웠던 단어들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귀찮았던 질문들까지. 그때의 아이는 아주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매 순간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더 많이 배울 수 있고요! 자녀의 방학 계획표를 보며, “훌륭한 계획이다. 그런데, 계획은 융통성 있게 세우는 것도 좋아.”라고 말을 시작해보세요. 아이가 먼저 “융통성이 뭐야?” 묻지 않는다면, “6시에 저녁을 먹기로 했지만, 오늘은 배가 고프니까 5시 반에 먹는 융통성을 발휘해볼까? 이렇게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처리하면 융통성 있다는 말 들을 거야.”라고 먼저 설명 해주시면 됩니다. 아이가 혼자, 또는 수업 시간에 새로 배웠다는 단어가 있는지 물어 그 어휘들을 이처럼 대화에 넣어 다양한 문맥을 재차 접함으로써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도록 도와주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독서 가이드입니다. 무작정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고 조금 수준이 있어 보이는 책들을 읽힌다면, 독서 자체를 어렵고 재미없는 것으로 느끼기 쉽습니다. 독서를 통해 어휘력을 키울 수 있지만, 거꾸로 어휘력이 높아져야 전보다 높은 수준의 독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수준에 맞는 책을 추천해주셔야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것이죠. 흥미 위주의 쉬운 책들로 시작해 점진적으로 수준을 올려 가며 책을 읽는 게 중요합니다. 만약 아이가 딱히 흥미있어 하는 분야가 없고, 부모님께서도 어떤 책을 선정해줘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자녀의 학년에 맞는 독해 참고서를 풀게 하는 것도 좋습니다. 요즘은 중고등뿐만 아니라 초등 독해 참고서도 잘 나오더라고요. 다양한 지문을 골고루 읽을 수 있고, 문제를 통해 이해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전을 검색해본 횟수만큼, 부모님과 대화를 나눈 빈도만큼, 자녀의 어휘력과 국어실력이 쑥쑥 오르길 바랍니다. 작은 습관들이 누적되어 큰 차이를 만들 거예요!
위 칼럼은 서울시교육청의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