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향 같은 계절, 느긋한 여유의 미학
3회 차 모닝칼럼 —
– 커피 향 같은 계절, 느긋한 여유의 미학 –
가을은 유난히 ‘고소하다’.
커피 향처럼, 누룽지 숭늉처럼.
그 향은 코끝에 머무는 게 아니라 마음속까지 스며든다.
노랗게, 붉게 물든 단풍들 때문일까.
가로수길을 걷다 보면 머리 위로 펼쳐진 나뭇가지들이
마치 히피펌을 한 사람들처럼 풍성하게 흩날린다.
노랑, 주황, 빨강.
천연 색감들이 어쩜 이토록 조화로울까 싶다.
이 계절의 예쁨은 늘 그랬을까.
아니면 지금의 내가 여유를 배운 탓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걸까.
커피잔을 들어보니 바닥이 보인다.
기분은 그대로인데 커피는 다 떨어졌다.
예전엔 카페에서 리필이 기본이었는데,
이젠 따뜻한 물이라도 달래듯 담아 마셔야 한다.
이게 인생인가 싶다.
아쉬움을 물로 희석시키며, 그래도 다시 마신다.
‘그래, 이제 할 일 해야지.’
머릿속에선 늘 이 말이 맴돈다.
해야 할 일, 미뤄둔 일, 해야만 하는 일들.
그런데 몸은 아직도 느릿하다.
가을이 주는 여유가 나를 붙잡고 늘어진다.
그 여유가 참 밉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문득 생각났다.
어릴 적 가을 소풍.
학교에서 정해준 소풍날, 도시락 싸고, 운동화 신고,
마지못해 따라가던 그 길이 왜 그렇게 귀찮았을까.
엄마 아빠, 언니들이랑 함께 가지 못하는 게 서운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낯선 아이들 틈에 있는 게 불편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늘 사회성 없는 아이, 자발적 아웃사이더였다.
사람보다 나무가, 소음보다 바람이 더 좋았다.
그런 내가 이제야 안다.
소풍을 가는 이유를.
집을 벗어나야, 나를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강릉 여행도 그랬다.
생각지 못한 여유가 주어진 덕분에
한적한 바다와 찬란한 하늘을 만났다.
차가운 바람은 불었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그건 ‘행복’이라기보단 ‘균형’ 같았다.
지금 이 카페 창가 풍경도 만만치 않게 좋다.
유리창 너머로 떨어지는 낙엽,
가끔 들려오는 커피머신 소리,
그리고 나의 느린 숨결.
집안이 아닌 집 밖에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소풍이다.
아직 10시 39분.
시간 많네.
그 말이 오늘따라 참 달콤하다.
가을의 소풍은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커피 한 잔, 창가 자리, 그리고 나.
그것만으로도, 계절은 충분히 고소하다.
그런 의미에서...
별쿠폰 찬스로 커피한잔 리필해야겠다.
만성위염으로 카페인을 줄여야하는데...
가당치도 않다.
이 기분 그대로 지켜.
#반짝반짝단풍잎 #창가자리 #아침에스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