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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성장을 위한 휴식에 대하여

대표처럼 쉬는 회사 어떠신가요?

오늘도 전 세계의 스타트업은 생존과 성장을 위한 치열한 레이스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각자의 섹터에서 남들과 경쟁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팀 자체의 목표를 향해 스스로를 시험하며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습니다. 일종의 자기증명인 셈이죠. "왜 회사 생활을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는 질문에 각자 나름의 이유를 내놓겠지만, 실상은 생존 그 자체가 목적이 된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생존의 문턱을 넘고 나면, 그다음엔 ‘왜 살아남아야 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따라옵니다. 사람은 그렇게 존재의 이유를 찾기 위해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 길 위에서 때때로 이기심에 이끌려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나는 나쁜 사람이 되겠어!” 같은 악의적 선언을 품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한탕 노리고 판을 짜는 사기성 기업을 빼면, 본격적으로 ‘악한 목적’을 가지고 굴러가는 조직은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생존을 위해 종종 악하게 행동하는 기업들은 차고 넘치죠.




사람이 성인으로, 사회 구성원으로 기능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립니다. 어머니의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보육의 시기를 지나, 국가의 교육제도를 따라 약 12년을 거쳐야 비로소 사회적 출발선에 설 수 있죠. 이후에도 대학·대학원, 다양한 보수 교육 등 끝없는 성장과 학습이 이어집니다.

기업의 성장 곡선도 사람의 성장과 매우 닮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훨씬 더 압축된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미 일정 수준의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시작하기 때문에, 유년기를 줄인 상태로 시작하지만 안정적인 성장 국면까지는 끝 없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대단히 압축적이면서도, 또 길게 느껴집니다. 매일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중학교 시절처럼요.


이미 안정된 생애 주기를 갖춘 기업이나, 정형화된 성장 곡선에 올라선 기업과 달리, 막 성장 중인 스타트업은 변화의 주기가 매우 짧고 빠릅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의 경우 입사와 동시에 나의 커리어 아크를 그릴 수 있습니다. 몇 년 뒤엔 대리, 그 다음엔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는 흐름이 보이니까요. 하지만 스타트업은 내년에도 이 회사가 존재할지조차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이 장기적인 커리어 플랜을 설계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몇 년 뒤엔 대리가 되고, 돈을 얼마쯤 모으겠다"는 식의 목표만으로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최소한, 그런 사람이 다수인 스타트업이라면, 아마도 ‘성장하는 스타트업’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 사는 기업에 다니는 것’은 매우 피로한 일입니다. 특히, 매슬로우의 하위 욕구가 충족된 상태에서 느끼는 생존의 피로는 더 깊습니다. 망해도 실제로 굶어 죽는 건 아니니까요. 마음은 배고프지만, 몸은 배고프지 않은 상황이죠. 오히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비젼에 배고픈 사람들’은 잦은 야식과 스트레스로 몸무게가 늘어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대표는 조직원들이 계속 ‘배고픔’을 느끼며 절박한 성장을 갈망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조직을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성장시켜야 할 대표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직원들을 무한히 푸시할 수는 없습니다. 성공에 대한 열망만으로 계속 달릴 수 있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몰입에 비례한 적절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업종과 업태에 따라 몰입과 휴식의 리듬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조직은 빠른 템포로 달릴 수 있지만, 대다수의 조직은 ‘뛰는 국면’과 ‘걷는 국면’을 유기적으로 조율해야 합니다.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못 미치는 사람들을 푸시해 밀어붙일 수 있는 조직도 있지만, 우리 같은 업태의 조직은 그렇게만 운영되기는 어렵습니다. 적절한 휴식과 보상이 병행되어야만 하죠.

그리고 그런 조직의 템포를 조절하는 대표 또한 때때로 휴식이 필요합니다. 조직 내에서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관리하기 쉬운 자산은 대표 자신입니다. 대표는 스스로 언제 휴식이 필요한지, 언제 집중할 수 있는지, 언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적절한 휴식을 제공해줘야 합니다. 이걸 소홀히 하는 것 또한 대표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조직 내에서 가장 중요한 인적 자원이자, 언제든 투입 가능한 A급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운용하는 셈이니까요.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주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최근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약 두 달간 휴식을 갖겠다고 팀에 알린 바 있습니다. 두 달 만에 체중이 6kg이나 빠졌으니까요. 사업 레이스를 장기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라도 건강은 필수적입니다. 혹여 심각한 질병이라도 생겼다면 이후의 경영은 어려워질 테니까요. (다행히 지금으로선 그렇게 보이진 않습니다.)

두 달의 휴식을 결심하고 나름대로 준비도 했지만, 막상 쉬는 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더군요. 6월 초순부터 본격적인 휴식 모드에 들어갔는데, 6월 중순부터 갑자기 인바운드 영업이 폭주하면서 대응을 하다 보니 어느새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대표니까 아파도 일할 수 있구나”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제도적으로 병가를 보장하려는 분위기가 있긴 하지만, 현장의 한계로 인해 제도만으로는 완전히 실현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는 ‘휴식의 자기 결정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다만, 회사에 일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억지로라도 저를 쉬게 했다면, 저는 오히려 스트레스로 더 아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사에 돈이 들어온다는데 재미없을 대표가 있을까요?)




이게 오늘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저는 모든 구성원이 대표처럼 쉴 수 있는 조직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휴식이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이루어지는 조직 말이죠. 사람에게도, 조직에도 휴식은 필수입니다. 휴식의 템포와 형태는 각기 다를 수 있지만, 그 존재 자체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누군가는 더 긴 휴식을 원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짧은 휴식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쉬느냐가 아니라 ‘왜’ 쉬느냐입니다.

우리는 무제한 연차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쁜 일정 속에서 충분히 연차를 사용하는 건 아직 어렵지만요. (조직을 위해 희생해주시는 모든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나는 일 년에 최소 120일은 쉬어야 한다”고 말해도, 그것이 조직에 더 깊이 몰입하고 기여하기 위한 휴식이라면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직원이 대표처럼 쉴 수 있는 회사,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 대표만큼만 쉬라는게 아니라, 쉬고싶을때 쉰다는 의미입니다...!!!!

** 대표만큼만 쉬면 그건 복지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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