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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홀 시대의 종결

조직의 변화에 맞춘 리더의 소통 방법의 변화

DTD를 아시나요?

프로야구 팬들 사이에 ‘DTD(Down Team is Down)’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 나가던 팀도 결국엔 무너진다는, 일종의 자조 섞인 농담이죠.
연승을 거듭하며 시즌 초반 선두를 달리던 팀이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불펜의 붕괴와 주전 선수들의 체력 저하로 인해 연패를 거듭하고, 결국 하위권으로 밀려나는 흐름은 140경기가 넘는 프로 야구에서 종종 반복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팀의 기세나 사기는 어느 순간부터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꺾이고, 그 시점부터는 무엇을 해도 분위기가 바뀌지 않죠. 이때마다 팬들은 “아, 역시 DTD구나” 하며 고개를 젓곤 합니다.

이건 꼭 야구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처음엔 뜨거운 열기로 시작한 수 많은 조직들이, 조금만 흐름이 어긋나면 쉽게 무기력해지고, 그 상태를 오래 방치하면 전체의 리듬이 무너지는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조직 퍼포먼스의 향상성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직의 퍼포먼스의 일관성과 향상성을 꾸준히 유지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조직원들은 그때그때의 분위기나 팀의 정서적 흐름에 쉽게 영향을 받습니다.

사기가 떨어지면 금세 낙담하고, 작은 성과에도 과하게 뜨거워지며 감정의 진폭에 따라 퍼포먼스가 좌우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대기업들은 자본을 들여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사람보다 구조가 퍼포먼스를 담보하는 체계를 만듭니다.

하지만 자원이 제한된 회사에게 그런 방식은 쉽지 않습니다.
스타트업들은 빠른 성장이 필요한 조직들은 시스템이 다이나믹에 제약이 생기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시스템을 배제하는 경우도 있구요.
이런 경우 시스템보다 사람의 리듬, 타이밍, 몰입도에 훨씬 더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리더들은 조직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계속 기준점을 잡아줘야 합니다.
기준점을 잡는 방법은 각 리더마다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조직의 방향성 설정에 있어 ‘메시지’는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리더가 조직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메시지의 형태(말, 글, 행동), 지향점(전원, 일부인원, 중간 리더들) 등에 따라 같은 메시지라도 효과성은 천차만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써왔던 도구는 타운홀 미팅이었습니다.

* 타운홀 미팅 : 회사의 전 조직원이 조직 내의 한 장소에 모여서 메시지를 공유하는 방식의 세션.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조직의 뼈대가 아직 단단히 자리 잡지 않았던 시절에는,한 번의 타운홀이 수많은 고민과 혼선을 정리해주는 기준점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타운홀은 단순한 회의 이상의 의미였고, 실제로 여러 번의 조직의 전환점을 타운홀을 통해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번의 타운홀을 지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조직에 변화가 필요할 때마다 타운홀이란 도구로 흐름을 바꾸려 해왔지만,
이제 그 방식이 과연 여전히 유효한가 하는 의문이 생긴 겁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조직은 분명 달라졌고, 그만큼 우리가 익숙하게 써오던 도구에 대해 점검해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메시지의 낙수효과

조직이 성장했습니다.
특히 주니어 리더들의 성장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빠르고 단단했습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신입에 가까웠던 이들이, 지금은 실무를 넘어 팀을 이끄는 리더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이 원래부터 좋은 재목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재목이 쓰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조직이 성장했고, 그 속에서 리더들이 변했고, 조직 안의 리듬과 문법이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 흐름 안에서 자기만의 리더십을 증명해냈습니다.

예전에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조직은 ‘리더 (대표) ↔ 전원’의 구조였고, 경험 많은 리더가 아래를 끌어올리는 방식이 주를 이뤘습니다.
당연히 그 과정엔 하나로 통합된 메시지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한 자리에서, 같은 메시지를 듣는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조직의 중간 허리가 생겼고, 이들은 수 많은 타운홀을 통해 이미 충분히 조직의 작동 원리와 기대 수준을 이해한 채로, 각자의 방식으로 팀 내 기준과 문화를 주도적으로 정립해나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과업이 주어졌을 때, 누가 먼저 시동을 걸지 굳이 위에서 따로 정하지 않아도 주니어 리더들이 스스로 방향을 제시하고 팀의 에너지를 정렬하는 모습이 늘고 있습니다.
프로세스 정비, 일정 조율, 커뮤니케이션 방식까지도 이제는 리더들이 챙기기 전에 이미 현장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처럼 위에서 일방적인 메시지를 반복해서 내릴 필요 없이, 조직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방향과 속도를 맞추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겁니다.
상위 리더가 모든 구성원을 일일이 일깨우지 않아도, 이제는 각자의 위치에서 기준을 공유하고 실행하는 흐름이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다 모으는데 쓰는 시간이 아깝다!


조직이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을 때, 리더는 새로워지는 조직을 더 잘 이끄는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이제는 "무엇을 말해야 할까?"보다, "이미 전해진 메시지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시점입니다.
과거에는 리더가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을 타운홀과 같은 방식으로 조직 전체에 일괄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죠.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메시지는 더 이상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습니다.
누가 먼저 이해했는지, 누가 그걸 동료에게 설명하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지,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한 변수로 작동합니다.
말 한마디가 내려가는 구조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의미가 붙고, 맥락에 따라 해석되고, 때론 다른 형태로 발전해가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도화되는 조직에서 리더는 더 이상 ‘선포자’가 아닙니다.
이제는 메시지의 흐름을 관찰하고, 그 속도를 조정하고, 때론 해석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을 던지는 일보다, 말이 어디까지 흘러갔는지, 어떻게 남았는지를 살피는 일이 더 중요한 역할이 된 것이죠.

그래서 요즘 저는, 타운홀보다 더 본질적인 도구는 1:1 세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1:1은 단순한 성과 면담도, 칭찬이나 피드백의 자리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조직의 메시지가 각자에게 어떻게 다르게 해석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려 합니다.

“이번에 공유된 방향 중, 너에게 가장 와닿았던 메시지는 뭐였어?”
“그게 너의 일 방식이나 판단에 어떤 영향을 주었어?”
“반대로, 별로 와닿지 않거나 오히려 거슬렸던 부분은 있었어?”

이런 질문들을 통해서만 메시지의 실질적 파급 효과를 점검할 수 있습니다.
같은 말을 전해도 어떤 이는 동기부여를 받고, 어떤 이는 부담이나 압박으로 느끼는 법입니다.
그 차이를 기록하고, 그 맥락을 반영해서 다음 메시지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지금 리더의 역할입니다.

예전엔 말을 해야 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던 시기였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이미 충분히 전달된 말들이 조직 안에서 어떻게 순환되고 있는지를 읽는 일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입을 닫고, 귀를 여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직의 리듬을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위치에 리더는 여전히 서 있습니다.


타운홀의 종결


좋은 조직은 좋은 메시지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훌륭한 조직은, 그 메시지를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넷플릭스는 ‘문화 덱’이라는 문서로 방향성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사우스웨스트항공은 그룹 타운홀을 통해 실시간의 감정을 나누며, 링크트인은 CEO의 주간 메모를 통해 구성원과 거리를 좁힙니다.

이 사례들은 모두 해당 조직에 맞는 방식으로 정교하게 작동해온 결과물입니다.
조직의 업태, 문화, 규모, 리더십 스타일 등 수많은 요소들이 맞물린 결과로, 그저 ‘좋은 방식이니 우리도 해보자’는 접근만으로는 같은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메시지를 전하는 형식은 조직의 리듬에 따라, 그리고 리더와 구성원이 맺는 관계에 따라 계속 바뀌어야 합니다.
모든 조직이 같은 도구를 쓸 필요는 없고,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방식은 무엇인가’를 꾸준히 점검하고 조정하는 유연함이 더 본질적인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조직에게 타운홀은 오랫동안 효과적인 도구였습니다.
혼란스러웠던 시기에는 중심을 잡아주었고, 정체되려는 흐름에는 방향성을 불어넣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도구를 잠시 내려놓기로 한 결정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타운홀은 영원히 끝났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이 시점, 우리 조직의 성숙도와 구성원의 숫자, 그리고 메시지의 흐름 구조를 고려할 때
타운홀이 가장 효과적인 전달 방식은 아니라는 판단에 따른 선택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 도구를 일단 잠시 내려두고 조직의 현재 리듬에 더 맞는 새로운 연결과 소통의 방식을 실험해보려 합니다.
조직이 한 단계 성장하면, 소통의 방법도 함께 진화해야 합니다.
우리 조직은 지금, 그 진화의 흐름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언젠가 다시 타운홀이 우리에게 가장 유효한 방식으로 돌아올지도 모르죠.
그때 우리는, 새로운 리듬 위에서 같은 도구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꺼낼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당신의 조직이 방향성을 잡는 도구는 어떤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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