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통한 국제 교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공연기획자의 사명감이란.

by 김연정


공연기획자로 일하면서 가장 역점에 두었던 분야가 바로 '국제 교류'다.


영어·일본어·중국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줄 아는 데다, '한국의 문화를 더 널리 알리고 싶다'라는 야심찬 목표까지 더해졌던 게 결정적 이유였다. 사실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만든 펜팔 친구와 한국에 거주하던 소수의 외국인 친구들이 있었으나, 극단에서 일하기 전에는 비행기도 타본 적이 없었던지라 현지의 분위기를 읽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내가 아는 외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잘 알거나, 적어도 한국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국제 교류 분야에 대해 이해를 넓히게 된 것도 공연계에 몸담으면서부터다. 공연을 하러 해외에 나가 만난 이들과 친구가 되면서 사적인 교류를 시작했고, 이후 국내 공연예술축제에서 일하면서 많은 해외 아티스트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북한이요 아니면, 남한? 어느 쪽인가요?



2009년, 처음 극단과 유럽 투어를 갔을 때 당황했던 것은 '한국에 대해 아는 이들이 거의 없고, 관심도 거의 없다'라는 사실이었다. '어디서 왔어요?'고 물어서 '한국에서요!'라고 대답하면, '북한? 아니면 남한? 어느 쪽요?'라는 질문이 이어지는 식이었다. 유럽에 가서 TV를 틀면, 쏟아지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를 보면서 이 높은 인지도가 어디서 오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누가 봐도 그들보다 성능이 좋아 보이는 핸드폰을 들고 있는 내게 '일본 제품이죠?'라고 묻지를 않나.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던 아티스트는 내가 쌍꺼풀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일본인이지?'라고 무례하게 국적을 판정 지었다. 지나가는 아시아인을 보면, 일본 혹은 중국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것처럼 국적을 구분 짓는 이들의 무지함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곤니치와!' 혹은 '니하오!'는 내가 가는 길마다 나를 따라다녔다. 이런 에피소드를 겪다 보니 오기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문화를 찬양하고, 경제대국으로 성장해가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을 피력하는 이들 속에서 한국의 자리는 없어 보였다. 일본의 만화와 영화, 그리고 패션에 심취해 환상과 동경을 갖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면서 '문화의 중요성'을 거듭 실감했다. 그때부터 공연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더 알리고, 해외시장을 개척해야겠다는 의지를 자연스럽게 다지게 되었다.





제가 본 작품 중에서 베스트 3 안에 들어요. 너무 감동했어요!


20160923_195842.jpg 프랑스 포앙우뜨, 초연 쇼케이스 전 풍경

극단이 했던 공연은 무언극(대사가 없이 움직임과 표정, 호흡만으로 이루어지는 공연 장르) 이어서 따로 대사가 없었고, 자막을 설치할 필요도 없었다. 몇 차례 외국 공연을 해본 결과, 자막이 없다는 것은 큰 장점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고 해도 그것이 현지에 최적화된 언어로 치환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자막 오퍼레이터가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날에는 자막의 배열 자체가 엉망진창이 되어 작품의 맥이 확 끊겨 버린다. 대사를 이해하려 자막에만 집중하다 보면, 배우의 연기나 무대의 효과는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또 영어로 이루어진 문화콘텐츠 관람에 익숙한 유럽인들에게 자막은 치워버리고 싶은 장애물임이 분명했다.


아일랜드로 공연하러 갔을 때 한국의 전통설화를 현대화한 작품을 보고 과연 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으나, 공연이 끝나자마자 기립박수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공연이 끝난 이후에는 관객의 대부분이 돌아가지 않고 극장 앞에 서서 배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배우가 분장을 지우고 밖으로 나오길 기다렸다가 배우가 오면, 찬사를 던지곤 했다.


"대사가 없다는 것조차 잊어버렸어요. 호흡과 표정 만으로도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달까요. 연기력이 엄청나요. 한국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런 뛰어난 작품이 있다니, 당신 극단은 한국에서 분명 유명하겠지요?"


이런 이야기를 건네는 관객들의 말들을 배우에게 전하면서 나도 모르게 큰 환희를 느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며느리와 공연을 관람하러 온 어느 할머니 관객분의 이야기였다.


공연을 너무 좋아해서 10대 때부터 백 편은 넘게 봤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 작품이 그중에서 베스트 3 안에 들어요. 먼 곳까지 와줘서 너무 고마워요.

제가 식사 대접을 할 수 있게 해줘요. 감사 표시를 하고 싶어요


내 손을 꼭 잡고, 따스한 어조로 말을 건넸던 할머니의 눈빛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그녀는 꼭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며 며느리에게 현금을 찾아오게 했다. 갈 길이 멀어 같이 식사를 하지 못해 아쉽다는 인사를 건네며, 그녀는 여운이 담긴 눈길을 뒤로 한 채 사라져갔다. 그날의 기억은 내가 국제 교류에 더 몰두하는 데 있어 의미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음에 틀림없다. 물론 그날의 식사도 좋았고 말이다.




꼭 다음에 같이 일하고 싶네요!
1514126571000.jpg 한불합작 <내 땅의 땀으로부터> 프랑스 인터뷰 기사


한국 팀과 아르헨티나로 투어를 갔을 때 그곳에서 만난 예술가들과도 '멍와우 프로젝트'라는 민간 차원의 예술 교류 프로젝트를 진행해 전시회에 참여해 상을 받기도 했고, 이후에는 프랑스 댄스 컴퍼니와 지속적으로 협업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기도 하다.


국내의 공연예술축제에서 일하면서 짧게 스친 아티스트들에게도 '앞으로 같이 일하고 싶다!'라는 제안들을 많이 받곤 하는데 이럴 때 기분이 가장 좋다. 그만큼 서로 간의 의사소통이 잘 되었고, 내가 하는 직무의 프로페셔널함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에.


'정말로 같이 일하고 싶은 예술가와 만나는 기회'란 흔치 않다. 아무리 작품이 뛰어나도 인간적인 매력이 없는 아티스트도 있고, 반대로 더없이 친화력이 좋아도 작품 자체가 내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좋은 작품에 좋은 아티스트가 결합된 팀을 만나면,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런 이유로 몇몇 팀과는 계속해서 연락을 하고 있고,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해외에 나가서 작업하게 되면,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뿐더러 우리나라의 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아진다. 나는 그곳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지 해외에 가면,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더 열성적으로 노력을 하곤 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나와 같이 작업을 하거나, 교류를 하는 아티스트들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을뿐더러 한국에 대한 애정도 크다. 이들은 자국에 돌아가 '한국 홍보대사'를 자처한다.



처음 국제 교류를 시작했을 때를 돌아보면,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한국은 지난날과는 달리 높은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는 물론 경제적 발전에서도 기인하지만, 문화강대국의 위치에 올랐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화의 힘을 직접 목도하였기에 더욱 이 분야에 대한 노력을 멈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keyword
이전 10화공연기획자가 하는 일 4. 같이 할 사람들 모으기